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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재탄생

구덩이에 빠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우울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종이와 연필은 주변에 늘 포진해

있었다


하늘이 낮아진  날

사다리를 세워두고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구덩이구덩이

수없이 그려지는 구덩이

사다리 사이에도 구덩이는 그려졌다


 그 속에 벌레를 가득 채웠다

벌레 사이에 나를 채웠다

안심이 되었다


그림의 시작은 구덩이였다


벌레를 그리다 푸른 시간이 다가오면

다시 나를 구덩이에

채워 넣고 잠들 수  있었다


햇빛이 거실 앞까지 내려온 날에

눈을 떴다


내가 그려놓은 종이 위에 군데군데

칠해진 그림자

색은 없었다


에스키스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서양화를 그린다

색은 화려하다


구덩이는 내게 새 얼굴을 주었고

그곳에서 나는 재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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