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그릇
#엄마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8년 만에 얻은 귀한 딸. 할머니는 엄마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여든이 넘은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가 엄마를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셨어. 이 나이가 돼도 있지,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해.
그랬구나.
할머니 가슴도 두근두근 했을 거야.
#아들
내 새끼 고생할까 다칠까 애태우는 마음, 나도 안다. 아들이 산 넘고 물 건너 롯데월드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내 가슴도 떨렸다. 안 되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이미 머릿속에선 영화 속에서 일어날법한 사건 사고가 반복 재생되고 절대 안 된다고 사정해 보자고 작전을 짠다. 이 대목에서 심호흡 여섯 번, 그리고 거짓말.
오! 좋은 경험이겠네!!
재밌게 다녀와, 알았지?!!
#주문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혼자 8개국을 여행해 돌아온 이길보라 감독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아빠는 그녀가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보라야, 괜찮아, 경험!!
마치 내 아빠의 말처럼 읽는 순간, 가슴에 새겼다. 괜찮아, 경험! 드디어 나도 이렇게 멋있게 말할 수 있다니!!
#연결
할머니가 곧 엄마고 엄마가 곧 나다. 나는 곧 아들이지 않겠나. 여기서부터 어렵지만 귀한 사유의 여정.
내리 귀한 사랑을 받아 여전히 소녀 같은 나의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경하며 동시에, 아들의 도전에 무조건 지지하는 기백이 나란 '한' 그릇에 담겨야 하나니.
두근두근 가슴이 뛸 때마다 나란 그릇이 커지는 신호라고 알아챈 뒤로, 이 신호 잦다. 얼마나 큰 사람이 되려고 이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