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코로나 확진을 핑계로 연재하던 소설의 마지막 회를 완성하자마자 브런치 '작은별'의 부캐를 잠시 놓았었답니다. 그런데 아이코, '잠시'가 잠시가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제가 발걸음을 하지 못한 이 공간에도 꾸준히 다녀가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간간히 저의 소식을 궁금해하시는 분들께도, 새로이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는 분들께도 모두 얼마나 죄송하던지요.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안부인사를 전합니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고개를 내미는 시기이지만
건강히, 편안히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 오뉴월의 육아
오랜만에 차분한 밤을 맞이했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봅니다.
여름밤 개구리울음 소리와 시원한 밤바람을 느끼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그새 올해의 반이 지나갔고, 저의 육아 일기는 오월과 유월을 건너뛰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꼬미와 또미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신나게 다니고 있답니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마치 콩나물처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오월에는 제 친구 결혼식에서 화동을 했었지요. 결혼식 시간을 한 시간이나 뒤로 착각한 엄마 때문에, 저희 아이들은 하마터면 화동 입장을 못할 뻔했었답니다. (친구 결혼식을 망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요 ㅠ_ㅠ) 어쨌든 덕분에(?) 아이들은 인생 첫 결혼식에서, 인생 첫 화동을 리허설 한번 없이 무사히 잘 해내었다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에피소드는 '여성시대' 라디오에 사연으로도 방송되었었답니다. 사실 저는 제 사연이 방송되었다는 사실을 두 달이 지나서 알게 되었지만요. 방송국에서 상품 수령을 위해 주소를 입력하라고 연락이 와서 (스팸문자인 줄 알고 보지도 않았었는데)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허브 먹은 한돈'을 포함한 무려 세 개의 상품이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호호.
또미가 18개월 정도 자라니 아이 둘과 함께 바깥활동을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활동반경도 넓어져 차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는 놀이터에까지 진출을 했었지요. 홍제동에 있는 '떼굴떼굴 놀이터'는 모래놀이, 긴 미끄럼틀, 숲 속 해먹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선물해 주었었습니다. 일산 YMCA 건물에 있는 커다란 실내 놀이터에서는 신나게 방방 뛰었었지요.
어느 날은 남편이 0.1초 클릭에 성공, 덕분에 난지캠핑장에서 글램핑을 경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야외 바비큐와 비눗방울만으로도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참, 저는 고작 5세와 3세인 아이들을 데리고 혜화에 있는 국립 어린이과학관에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과학관 가기에는 너무 어린아이들이 아닐까, 난 극성 엄마야, 등의 고민과 자책(?)을 하면서도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과학'관이 아니라 또 다른 신기한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배웠었답니다. 그 외에도 미술관, 음악회, 아쿠아리움, 공원, 궁궐. 서원 등 부지런히도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참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저는 올해 목표 - 소리 지르지 않는 우아한 엄마 되기 - 를 달성하지 못한, 거친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18개월이 지나며 또미는 '자아'가 생기고 있는지 떼쓰기, 삐지기, 주장하기, 말 안 듣기, (누나도 한 적이 없는) 길바닥에 드러눕기, 등의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꼬미는 48개월을 채우며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딸 육아의 어려움 - 제1장. 감정싸움'을 시작하였지요. 웃었다가 울었다가, 엄마하고만 논다고 했다가 엄마와는 절대로 놀지 않겠다고 했다가,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가 먹기 싫었다가, 등등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하며 엄마의 사랑과 인내를 시험합니다.
저는 시험에 들지 않겠다고 밤마다 다짐합니다만...
저의 마음도 저의 집도 점점 더 어지러워지고 있는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요.
#3.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그러던 어느 날, 꼬미가 집에서 놀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처럼 사고는 한순간이었습니다. '꼬미야, 이제 손 씻고 저녁 먹자.'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지요. 아이는 울부짖으며 달려왔는데 피가 후드득 떨어졌습니다.무슨 일인지를 살펴보던 저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아이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목 놓아 울던 아이는 놀라는 엄마의 모습에 더 당황하더라고요. 순간 저는 제가 엄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겠다며 다짐했었지요.
차분히 가방을 싸서 또미와 남편까지 모두 함께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었습니다. 처음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이러저러한 사유로 서울대병원 어린이 응급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지만 아이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즘 꼬미는 '구급대원'이 되겠다며 병원놀이에 심취해 있는 터라 저는 그 상황을 '진로체험 및 진짜 병원놀이'로 만들어보고자 최선을 다했었지요.
어쨌든 그 사건으로 남편도, 꼬미도, 또미도, 친정부모님도 한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꼬미는 응급실에서 스무 시간 정도 대기한 후에 수술을 했고 입원도 닷새 정도 했었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외래 진료가 두어 번 남아있고, 한쪽 손은 여전히 칭칭 감겨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유치원에도 다녀왔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꼬미는 입원기간 동안 재미있게 잘 지냈었습니다. 병실에 우는 아기가 있으면 달래주고, 오빠, 언니들과도 그림을 그리며 수다를 떨었지요. (애 엄마 입장에서는 감동적일 만큼) 친절하셨던 주치의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병원놀이도 심화 버전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에서 하는 '오늘의 발표' 담당 날에는 휠체어에 앉아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걷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오늘의 발표' 동영상을 찍어 유치원 선생님께 보내드렸었지요. 유치원 선생님들과 반 친구, 오빠, 언니들은 고맙게도 '답장 동영상'도 보내주었습니다. 영상을 본 남편은 '꼬미, 스타네?'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곳, 어린이병원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 아픈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저 작은 아기가, 저 예쁜 아이가, 저 씩씩한 친구가...' 싶은 환자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고작 손가락 하나밖에 다치지 않은 꼬미가 병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꼬미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병원 내의 작은 성당을 지나게 되었을 때, 그 앞에 있는 기도 나무를 보며 그녀는 이렇게 소원을 적어달라고 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