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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Jul 07. 2024

초여름의 영화 소풍, 무주산골영화제

2024 무주산골영화제를 다녀와서

영화제는 축제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처음부터 영화로 재밌게 놀 수 있는 축제가 되고 싶었다.
        

지난 6월, 여우비 내리는 초여름 날, 무주로 영화 나들이에 나섰다. 싱그런 초록 사이 자리한 반딧불이의 마을이 시끌시끌해지는 ‘무주산골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얼마만의 영화 여행인지,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에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무주로 향하는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자 도깨비가 장난이라도 치는 건지 말끔히 비가 그치고 뜨거운 여름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뒤이어 나타난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산골 작은 마을에서 유독 이상하리만치 시끌시끌한 그곳, 무주산골영화제의 축제 현장으로 들어섰다.


좌 : 2024 무주산골영화제 공식 포스터 (C) MJFF 2019 / 우 : 무주산골영화제의 메인 공간, 무주등나무운동장 입구 전경. 직접 촬영.


초여름이 시작되는 매년 6월경, 무주산골영화제는 조용한 산골 마을을 들썩이게 만든다.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한 편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오래된 버스 터미널의 작은 마을이 영화제를 찾은 이들의 차량으로 가득해진다. 초여름의 영화제답게 날씨는 매우 변덕스럽다. 낮에는 뜨거운 여름인 양 햇살이 쏟아지다가, 밤이 되면 채 가시지 않은 서늘한 봄밤의 기운이 불어온다. 햇살이 쨍쨍하던 푸른 하늘에 갑작스러운 여우비는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주산골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러한 변덕스러운 날씨의 초여름이 배경이라는 점이겠다. 그리고 영화제 또한 그 변덕스러운 날씨만큼 다채로운 면의 매력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참에 초록 사이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던, 아는 사람만 아는 무주산골영화제의 매력을 풀어보도록 할까.


2024 무주산골영화제 행사공간 안내도 (C) MJFF 2019
2024 무주산골영화제의 1) 무주플리마켓, 2) 낭만스테이지 공연, 3) 전통생활문화체험관 영화 상영. 직접 촬영.


무주산골영화제에 들러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산골영화제라는 이름만으로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드넓고 잘 마련된 행사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산골의 넓은 공간을 잘 개발하여 마련된 장소들을 활용해 다양한 영화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때문에 미리 영화제 공간 구성을 보지 않고 온다면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미리 참석하고자 하는 프로그램과 시간표를 찾아보지 않고 온다면 아쉬움을 품고 돌아가야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조금만 미리 살피고 온다면, 하나하나 색다른 매력을 띄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무주산골영화제를 만끽하고 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드넓은 행사장 속 마련된 공간들에서는 같은 시간대에 여러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된다. 따라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같은 해, 같은 날의 무주산골영화제에 들린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경험을 품고 돌아갈 수 있다. 그럼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을까.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서 진행되는 무주산골영화제의 (좌) 공연과 (우) 영화 <밀수> 상영 전 고민시 배우 무대인사. 직접 촬영.


영화제 프로그램들은 ‘창’, ‘판’, ‘락’, ‘숲’, ‘길’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뉘어있다. 각각의 카테고리들은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전하고자 기획한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보다 쉬운 이해와 접근을 위해 주요 장소와 프로그램 위주로 무주산골영화제를 풀어보자 한다.     


영화제의 메인이 되는 공간은 하얀 보랏빛 등나무로 둘러싸인 무주등나무운동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 중 하나로 손꼽힌다는 이 공간에서는 영화제 개막식을 비롯한 각종 주요 공연, 야간 영화 상영이 진행되며, 여러 이벤트 부스들이 운영된다. 1일 입장권으로 입장 가능한 이곳에서는 ‘운동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와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운동회 같아요.” 영화제 셋째 날, 10CM 가수 권정열이 했던 말처럼 등나무운동장에서의 하루는 마치 운동회 같다. 등나무와 계단식 스탠드로 둘러싸인 운동장은 형형색색의 돗자리들로 가득 채워진다. 관객들은 돗자리 위에 앉아 김밥과 치킨 등 저마다 챙겨 온 맛난 음식을 먹으며 한가로운 초여름 오후를 즐긴다. 그러다 낭만스테이지에서 공연이 열릴 때면 운동장 한구석의 커다란 텐트 아래 옹기종기 몰려들어 음악을 즐긴다. 갑작스레 여우비가 쏟아지면 팡팡 우산이 펼쳐지고, 누군가는 서둘러 등나무 아래로 비를 피한다.


산과 하늘 아래 펼쳐지는 무주등나무운동장의 무주산골영화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라도 하는 걸까. 메인 공연에서 퍼지는 노랫소리에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고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거린다. 해가 지고 나면 별이 박힌 하늘 아래 산과 등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영화를 즐긴다. 천장 없이 탁 트인 하늘 아래의 영화 상영은 관객들이 영화에 대한 반응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게끔 한다. <밀수> 속 배우 고민시의 천덕스러운 연기에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리고, <걸 샤이> 속 남자 주인공의 실수에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는다. 그리고 영화에 몰두해 있던 중 은은하게 불어오는 초여름 밤바람에 두런두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에 들어오며 배경이 인식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래도록 기억하겠구나.’


좌 : 2024 무주산골영화제 키즈스테이지에서의 영화 상영 / 우 : 영화 <무뢰한> 토킹시네마의 김성훈 씨네21 디지털콘텐츠본부장과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직접 촬영.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서의 무주산골영화제는 운동회 같았다면, 영화제 같은 무주산골영화제는 그 외 공간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산골영화관’. ‘무주전통생활문화체험관’, ‘무주예체문화관 다목적홀’ 등 공간에서는 일반 영화 상영과 함께 토킹시네마, GV와 같은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된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의 영화 상영과 토킹시네마, GV가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에 대한 특정한 제한 없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에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상업영화 등의 제한이 없다. 로맨스와 공포, SF 등의 장르 제한 또한 없다. 얼마 전 영화관 스크린 상영을 놓친 작품,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특정한 주제나 메시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덕분에 매년 영화제 사무국과 기획에 참여한 영화인들이 고심하여 선정한 추천작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영화제에 참석하는 관객들에게는 놓쳤던 작품을 만날 기회, 다시 스크린으로 보고픈 작품을 볼 기회, 그리고 평소에는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영화를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그렇게 선정된 추천작과 함께하는 GV, 토킹시네마에는 영화인들의 애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제의 관객들부터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이다. 외딴 산골 마을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찾아올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영화를 창조해 낸 감독과 배우, 제작진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작품에 대한 애정을 품은 사람들이 한 데 어울려 소통하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영화 비평가, 기자들과 함께하며 영화에 대한, 때로는 작품 너머 영화의 세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를 통해 영화제에 들른 이들은 더욱 영화를 사랑하게 되고, 더 넓어진 영화의 세계를 품고 돌아가게 된다.


좌 : 초여름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피해 나무 그늘을 찾은 사람들 / 우 : 무주의 별밤을 밝히는 등나무운동장의 입구 전경. 직접 촬영.


“영화제는 축제다”라고 이야기한 기획자의 말처럼, 무주산골영화제는 하나의 축제였다. 무주군민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이 모여 그려낸 푸르른 산골 마을의 시끌벅적한 영화 축제. 마치 여우비처럼, 도깨비의 장난처럼 1년에 한 번, 짧디 짧게 스쳐 지나가는 듯하지만 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 축제. 올해의 내가 만나지 못했던 무주산골영화제의 또 다른 면이 너무도 궁금해지는 초여름의 영화 나들이였다. 그런 아쉬움이 내년의 나를 또다시 그곳으로 이끌게 될까?



무주산골영화제 Muju Film Festival

홈페이지  https://mjff.or.kr/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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