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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 Aug 12.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그 안과 밖의 이야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 후기 #2 - 영화의 시작, 음악, 설정

<퍼펙트 데이즈>는 우리가 삶을 대해야 할 태도를 히라야마 씨를 통해 은근하게 전한다. 반복되는 듯한 매일을 사는 주인공 히라야마 씨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 순으로 풀어내는 <퍼펙트 데이즈>. 그는 반복되는 듯하지만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내며 그 속에서 누군가는 놓치고 말았을 빛을 발견해낸다. (영화 속에서 발견한 이야기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 삶의 빛을 찾는 여정”을 참고해주기를 바란다.)


빔 벤더스 감독과 야쿠쇼 코지 배우가 함께한 이번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 영화가 되어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스키의 향이 깊어지듯이, 잔잔하고 담백한 여운이 가득한 이 영화는 관객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깊고 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의 빛을 지키기 위해 히라야마 씨가 코모레비를 찾듯이, 나는 이 영화를 다시금 찾게 되리라.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퍼펙트 데이즈>는 인생 영화가 되어줄 것이다.


이처럼 마음에 든 영화를 글로 써 내리기란 쉽지 않다. 하고픈 이야기가 너무도 많기에 어디서부터, 무엇을, 얼마나 풀어내면 좋을지 고민하다 시간이 흘러 버린다. <퍼펙트 데이즈>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그 이야기를 다듬고 다듬어, 이번 영화는 두 편에 나누어 풀어내었다. 지난번은 영화에서 느낀 삶에 대해, 오늘은 영화의 안과 밖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 본 게시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 씨의 낮과 밤을 표현한 한국판 포스터 (C) 한국 배급 티캐스트


#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더럽다, 불쾌하다’라는 인식이 만연한 공중 화장실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안도 타다오와 같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와 예술가 16인이 참석해 총 17개의 공중 화장실을 새롭게 만들었다. 도쿄 시부야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이 화장실들은 ‘이게 정말 공중화장실이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감각적으로 지어졌으며, 도쿄 화장실 청소부들의 세심한 관리하에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https://tokyotoilet.jp/en/


해당 프로젝트로 새롭게 탄생한 공중 화장실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홍보 방안을 찾던 중 감독 빔 벤더스에게 연락이 닿았다. 다큐멘터리 분야에서도 활약하는 빔 벤더스 감독과 함께 단편 다큐멘터리 제작을 논의하며 홍보 프로젝트는 진행되는가 했다. 그런데 빔 벤더스 감독의 현장 답사 이후 프로젝트는 장편 영화 제작으로 변경되었다. 그렇게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탄생했다. 그저 지난 프로젝트의 아름다움이 조용히 묻히는 것이 아쉬워 홍보 방안을 기획하던 것이 <퍼펙트 데이즈>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탄생시켰다.


좌 : 안도 타다오의 진구도리 공원 화장실, 우 : 반 시게루의 요요기 후카마치 공원 화장실 © Shibuya City


# 빔 벤더스 & 야쿠쇼 코지


빔 벤더스 감독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감독이어서 그럴까, 이 영화의 초반 기획안이 단편 다큐멘터리여서 그럴까, <퍼펙트 데이즈>는 유독 다큐멘터리 느낌이 많이 나는 영화다. 영화 속 이야기는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히라야마 씨의 13일이라는 삶의 단편을 두 시간의 영화로 담아내었다. 이러한 구성은 야쿠쇼 코지 배우의 촬영 일정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가 촬영할 수 있었던 단 1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퍼펙트 데이즈>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촬영됐다.


빠듯한 촬영 일정에도 빔 벤더스 감독은 야쿠쇼 코지 배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며 그에게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몸짓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에 야쿠쇼 코지 배우만큼 적임자는 없었다.


<퍼펙트 데이즈>를 통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야쿠쇼 코지 배우의 역, 주인공 히라야마 씨의 대사 비중은 극히 적은 편이다. 영화 초반에는 주인공이 말을 못 하는 설정인가 싶을 정도로 히라야마 씨의 말수는 적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를 표현하는 야쿠쇼 코지 배우의 표정, 몸짓, 행동, 시선 하나하나에서 더욱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어스름한 새벽녘의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미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붙잡는 그의 눈,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이야기가 스칠 때 울컥 넘쳐버린 그의 감정, 우는 듯 웃는 듯 슬픈 듯 행복한 듯 알 수 없는 그의 표정. 전해지는 말이 적기에, 전해지는 의미는 더욱 깊다.


역시 거장은 하나의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 2024.07.13. <퍼펙트 데이즈> 씨네토크에서, 이동휘 배우 -


위대한 장인의 미소, 그 깊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 2024.07.21. <퍼펙트 데이즈> 씨네토크에서, 송강호 배우 -


송강호 배우의 말처럼 실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야쿠쇼 코지 배우의 미소 (C) 한국 배급 티캐스트



# 사운드트랙과 카세트테이프


주연 배우의 대사가 극히 적기 때문에 <퍼펙트 데이즈>의 사운드트랙은 더욱 빛을 발한다. 출근길, 히라야마 씨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그날의 일과를 시작한다. 주말이면 연필로 카세트테이프를 다시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의 방 한구석 가득한 카세트테이프는 하나에 몇십만 원을 준다고 해도 팔고 싶지 않은 그의 보물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카세트테이프’라는 소재만으로 누군가는 향수를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열심히 들었던 그때. 다시 처음부터 듣기 위해서는 연필을 테이프의 구멍에 꽂아 휙휙 돌려야 했던 그때. 테이프의 여러 곡 중 원하는 한 곡을 골라 듣기가 어려웠던 그때.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 조카가 테이프를 처음 본 것처럼 이제 누군가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과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매장에 들러 테이프를 구입하고, 늘어진 테이프의 치직 거림과 함께 음악을 즐겨 본 관객에게는 <퍼펙트 데이즈>의 카세트테이프와 올드팝이 무척이나 반가웠으리라.


<퍼펙트 데이즈> 사운드트랙
House of the Rising Sun – The Animals
Pale Blue Eyes – Lou Reed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 Otis Redding
Redondo Beach – Patti Smith
(Walkin’ Thru the) Sleepy City – The Rolling Stones
Aoi Sakana – Sachiko Kanenobu
Perfect Day – Lou Reed
Sunny Afternoon – The Kinks
Brown Eyed Girl – Van Morrison
Feeling Good – Nina Simone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은 대부분 실제 촬영 현장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로 재생되었다. 현장에 있던 모든 제작진과 배우가 같은 노래의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때문에 영화 속 장면들은 음악과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준다. 그 때문이었을까, 기획 초반 이 영화의 제목은 ‘코모레비’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며 촬영장에서 플레이된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Perfect Day》에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퍼펙트 데이즈>로 변경했다고 한다.

영화 속 실제 사용된 카세트테이프들 / 좌, 중앙 사진 출처 : https://www.perfectdays-movie.jp/en/collection/ / 우 : (C) 한국 배급


# 히라야마 씨의 방


담백한 성격의 히라야마 씨는 그 일상 또한 담백하다. 빔 벤더스 감독과 야쿠쇼 코지 배우는 히라야마 씨의 방 또한 그런 그의 캐릭터에 맞춰 설정했다고 한다. “히라야마라는 캐릭터에 맞지 않는 물건들은 비워 내려 했다”라고 전한 빔 벤더스 감독은 처음 미술팀이 배치해둔 많은 물건을 빼내고 비웠다. 그래서일까, 히라야마 씨의 방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나면 텅 빈 것처럼 담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그의 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꽤 많은 양의 책과 카세트테이프다. 그가 매일 밤 작은 스탠드 조명에 기대어 읽는 책과 매일 출근길 듣는 카세트테이프는 방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담백하게만 보였던 그가 열정적이고 집중하는 표정을 보이게 한 식물들 또한 가득하다. 크지 않은 그의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을 화분들에 내어줬을 정도로 말이다. 옷장 안에는 옷보다도 그가 촬영한 코모레비가 담긴 필름 사진 상자가 더 많다.


책과 카세트테이프, 식물들과 필름 사진. 히라야마 씨의 방은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얼핏 그의 삶을 훔쳐다 볼 때 그가 재미없고 텅 빈 하루하루를 보낸 듯했으나, 실은 그 하루하루는 새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것처럼 말이다.

텅 빈 듯 보이는 그의 방은 사실 책과 카세트테이프, 사진과 같이 그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C) 한국 배급 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글을 마치며, 이 영화를 이야기하며 히라야마 씨의 영화 밖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히라야마 씨의 전사는 비밀에 부쳐달라는 빔 벤더스 감독의 요청과 같이 이에 대해서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고자 했다. 이야기는 간략히 전할수록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기도 하기에.


다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부디 <퍼펙트 데이즈>의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히라야마 씨의 353일’을 담고 있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영화의 홈페이지에서는 영화의 여운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홈페이지 https://www.perfectdays-movie.jp/en/


그럼 내일도 부디 얼핏 보기에는 무의미한 듯 담백하고 평온한 하루 속에서 작은 새로움, 작은 아름다움, 작은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관련 글] 영화 <퍼펙트 데이즈> 후기 #1, 삶의 빛을 찾는 여정

https://brunch.co.kr/@collectormemo/33



영화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4)

감독  빔 벤더스

배우  야쿠쇼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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