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죽음을 대하는 태도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부고'
내 핸드폰에 요즘 자주 날아오는 부고 메시지가 떴다. 예전에 만나본 적 있던 처사촌으로부터 차가워진 가을날에 그의 어머니인 처숙모의 부고 메시지가 날아온 것이다.
아내와 함께 일산에 있는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가까운 관계여야 하지만 여러 가지 집안 사정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던 처의 숙부, 숙모인 데다, 그들의 자식인 처사촌들과도 한두 번의 만남이 전부인지라 관계가 제법 어색하여 찾아뵈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였다.
그래도 돌아가신 분에 대해 조문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 같아 검은색 계열의 옷을 골라 입고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디뎠다.
우리가 일찍 장례식장을 찾아간 탓인지 문상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아내와 나는 웃고 있는 처숙모의 영정을 뒤로하고 이 세상에 남아있는 처숙부와 사촌들과 마주 앉아 어색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꽤 긴 시간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못 본 사이, 세월은 제법 흘러갔고, 그 세월 속에 처숙모는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갔고, 처숙부는 아내를 잃은 슬픔보다는 옆에서 지켜본 죽음의 과정이 두려워 운동과 약으로 자기 자신의 몸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했다.
아내를 잃은 황망함으로 인한 처숙부의 눈물과 한숨을 예상했던 나의 생각을 비웃듯, 그는 오래 살기 위해 요즘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며 '7,723'이라는 선명한 숫자가 떠있는 휴대폰의 '걷기 앱'을 아내의 얼굴 앞에 자랑스레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 살며시 떠오르는 만족의 웃음이 나에겐 무척 생소했다.
몸이 여기저기 불편해서 병원을 자주 찾고 약을 먹는다는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말투의 이야기를 처사촌은 머리를 살짝 돌리고 약간의 헛웃음을 띄며 흘려듣고 있었다.
병과 투병하며 힘들게 목숨을 부지하다, 세상을 막 떠난 어머니를 옆에 두고, 노인 신체의 불편함을 걱정하고 걷기 운동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가벼움을 비웃는 듯했다.
죽음은 인간에게, 특히 죽음을 가까이 둔 노인에게 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관념인 것 같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살지만 막상 죽음이 눈앞에 이르면 어떠한 심정이 될지,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는 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싶다. 두려움보다는 담담함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다. 죽음은 제법 길었던 나의 인생의 마침표이자, 편안한 마음으로 긴 여정의 끝을 툭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먼저 죽음에 이른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스며들어있다, 초가집 굴뚝의 연기처럼 조용히 하늘로 스러져 갈 터이다.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우리 부부의 뒤통수 쪽으로 "아내처럼 힘들게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라는 처숙부의 늙고 처연한 목소리가 따라온다.
여전히 아버지의 말이 영 마뜩지 않은 처사촌의 일그러진 표정이 뒷목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듯하여, 괜스레 내 뒷목을 더듬으며 터덕터덕 어둑해진 장례식장을 걸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