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우리나라에 개봉할 무렵, 일하던 프로그램에서 이 영화를 소개했던 적이 있었다.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고, 귀여우면서 유머러스하기도 한 이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아이가 <원더>를 보고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면, 같이 보고 싶은 영화 목록 1순위에 업데이트해 놨었다.
아이가 10살 때, 때마침 아이의 영어 학원에 원작 소설인 <Wonder>가 진열되어 있었다. 책으로 먼저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사주었는데, 책의 두께와 글씨를 보고 아이는 책을 펼쳐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흥미를 끌어주기 위해, 영화의 미리 보기를 보여줬는데, 역시나 아이는 영화에 관심을 보였다. 결국 책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십 대에 들어서면서, 10살 인생에 친구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딸이, 어떤 느낌으로 이 영화를 볼지가, 원더를 n회차 보는 나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였다.
영화는 시작부터, 안면기형이 있는 주인공 '어기'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그의 외모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어기'는 태어나자마자, 비주얼만으로 분만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후 자라면서 사람들이 '어기'의 얼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들의 눈빛, 표정, 행동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가, 아직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어기'의 목소리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된다.
그렇게 '어기'의 외모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마침내, '어기'의 얼굴이 공개된다.
같이 영화를 보던 딸은...
"얼굴 괜찮은데? 왜?"라는 반응이었다.
영화가, 비주얼에 대한 *니주(이야기 진행 시, 클라이맥스를 위한 복선, 밑밥, 혹은 빌드업을 뜻하는 방송계 은어)를 너무 잘 깔아놨나 보다.
게다가, 원작 소설책 표지엔 텅 빈 얼굴에 큰 눈이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딸은, '어기'가 코, 입이 없고, 눈이 얼굴 한가운데 하나만 있는,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 얼굴을 상상했었다고 한다. 피부만 좀 안 좋지, 학교도 못 갈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렇게 '어기'의 외모에 대해 영화가 심어준 편견을 깨버린 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편견 없이 재밌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부터 병원을 자주 다녀야 했던 '어기'는 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집에서 엄마와 홈스쿨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기'가 사회에 나가 단단하게 위기를 겪어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든 엄마는,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어기'를 가장 가까이서 보아온 또 한 사람, '어기'의 아빠는 '어기'의 학교 입학을 반대한다. 아빠는 '어기'가 학교에 가는 것은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표현한다. 엄마와 아빠가 '어기'의 학교 입학을 두고 입장차이를 가지고 나누는 이 대화를 '어기'가 엿듣는다. '어기'는 마음이 복잡하다. 새로운 세상에 나가서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과, 그들 가운데에서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결국, '어기'는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우려했던 대로 그를 괴롭히고 무시하는 못된 친구도 만나고, 기대했던 대로 '어기' 그 자체를 바라보는 진정한 친구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친구인 줄 알았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사과하고 화해하며 '어기'와 친구들은 성장해 나간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러한데, 영화는 '어기'만 세상의 편견에 맞서 힘들 거라는 편견을 또 한 번 깨 준다.
'어기'의 누나 '비아'는 또 다른 고민들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어기를 태양에 빗댄 비아의 첫 내레이션이 그녀의 상황을 너무 잘 설명하고 있었다.
"August is the sun. My mom and dad and me are planets orbiting the sun."
"어기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 나는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다."
이 우주에서 나만 힘들고 나만 불쌍하다는 편견
안면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동생으로 인해, 부모님은 동생 케어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마음 성숙한 누나지만, 외롭고 쓸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쓸쓸함을 할머니가 채워줬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그 쓸쓸함이 더 커졌다. 게다가 아주 오래된 절친은 방학 때 캠프를 다녀오고 나서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서 비아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어기 위주로 생활하고 대화하는 부모님, 정서적 지지를 해주던 할머니와 절친이 떠나, 하루아침에 외톨이가 된 상황 속에서 비아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믿었던 친구에게까지 배신당하고 온 어기가 온 세상을 잃은 듯 좌절했을 때, 비아는 자신의 불행도 슬그머니 꺼내놓는다. 그리고 남매는 둘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해소한다.
이후, 비아의 슬픔에 한몫했던 그 절친의 상황과 삶의 아픔, 그리고 어기의 슬픔에 한몫했던 절친 '잭'의 상황 등, 각자의 이야기들이 각 에피소드들을 물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5살 어린 동생을 둔 10살 딸은, 어기보다 비아의 입장에 공감하는 듯 보였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우주의 중심이 달라진 느낌,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쌩~한 친구를 마주했을 때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는지, 여러 장면에서 울컥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시련이 닥쳤을 때, 나만 슬프고 나만 외롭고 나만 억울한 게 아니라는 것.
모든 이들의 말과 행동엔 내가 모르는 서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 눈빛과 표정, 태도만으로도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 등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아직 사고와 행동이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역.지.사.지. 남들의 입장도 생각해 보는 너그러운 마음의 아이로 성장하면 좋겠다. 아이들과 영화를 꼭 함께 보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나만 서운하고, 나만 슬프고, 나만 억울한 게 아니라,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 있고 고민이 있다는 진리를 영화를 통해 느껴보길 바랐다. 주변 사람들을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눈이 조금이라도 트였길 바라본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예고편에도 무릎을 탁 치게 하며 유쾌한 장면이 하나 나온다. 친해진 친구가, 친하니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을 조심스레 던진다.
"성형수술도 생각해 봤어?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좋지 못한 사람이 물어봤으면 무례했을 법한 질문이지만, 이 친구가 질문한 상황과 태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걸 아는 '어기'는 쿨하고 멋지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답한다.
"이게 받은 거야"
그리곤 둘은 깔깔깔 유쾌하게 웃는다.
외모로 인한 주변의 시선으로 상처받았다는 아이가, 이렇게 유쾌한 대답을 망설임 없이 던질 수 있다는 지점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