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쯤은 가뿐하게 폴짝 올라오는 고양이 덕에, 한동안 식탁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나는 식탁을 금묘의 구역으로 정했고, 식탁에 올라오면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 앞에 분무기를 대령했다. 분무기에서 물이 촤악 뿜어져나온다는 걸 아는 똑똑한 우리 루꼬는, 분무기를 보자마자, 잽싸게 식탁 아래로 내려갔다. 반복된 훈련으로, 결국 루꼬는 더이상 우리가 식사 중일 때 막무가내로 식탁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하하하. 이렇게 고양이도 훈련이 되는 구나...!! 승리감에 취해있을 때,
우리의 루꼬는 '식탁이 안되면, 다른 곳을 오르겠어!' 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했다.
식탁보다 조금 더 높은 조리대와, 식탁 뒷편에 있는 렌지대이다. 뜨거운 인덕션이 있는 곳에 올라가면 큰일이다. 한번은 열기가 미처 식지 않은 인덕션 위로 폴짝 뛰어올라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다행히 내 눈앞에서 그래서, 데이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조리대에 오르려고 할때에도 분무기를 대령하는 수밖에... 이렇게 지속적인 노력으로 식탁과 조리대는 사수했지만, 식탁 뒤쪽에 있는 렌지대까지는 막지 못했다. 루꼬는 식탁 뒤편 렌지수납대에 있는 에어프라이기 위에 올라앉아서라도, 우리가 식사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싶어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고양이의 본성이니, 마음 약해진 집사는 그 정도는 허락해주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렌지대의 맨 윗칸을 밟고 올라가, 기어이 렌지대 뒤에 있는 냉장고 위에까지 올라갔다. (우당탕탕!! 그 사이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박살이 나거나 말거나... )
으윽....
냉장고 앞에 의자를 끌어다 올라가서 냉장고 위를 살펴보았다. 아이가 2학년때 학교 방과후 과정에서 만든 작고 예쁜 미니어처 상자들을 둘데가 없어서 거기에 올려놓았는데, 묵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미니어처 상자들을 내려놓고, 냉장고 위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한번만 닦아선 안될 정도의 먼지였다. 냉장고 위를 점령한 루꼬는 엄마가 먼지를 닦던지 말던지 묵은 먼지를 아무렇지않게 밟고 다녔다. 나는 의자를 밟고 올라서, 냉장고 위를 열심히 닦았지만 냉장고 뒤쪽 먼지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결국, 막대 걸레를 이용해 냉장고 뒤쪽까지 어설프게 먼지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냉장고 위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깨끗해진 냉장고 위에 검정색 빈 상자를 하나 놓아주었다. 냉장고 위에서도 숨어서 우리를 내려다볼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루꼬는 상자가 맘에 드는지, 상자 안에 들어가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 밖을 관찰했다.
냉장고 위에 전시해놓았던 미니어처 상자들을 이참에 정리해서 버려도 될까, 이 미니어처를 만든 아이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이는 생각보다 쿨하게, "버려도 돼~"라고 해주었다. 실은 약 1년 전 방정리를 하면서, 버리려고 한차례 물어봤을 때는 안된다고 해서 결국 냉장고 위로 밀려난 바 있었다. 이번엔, 사랑하는 루꼬가 냉장고 위를 점령하게 해주기 위해, 미니어처는 버려도 된다고 해준 것 같다.
냉장고 위까지 올라가는 경로인 렌지대에서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깨지는 물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
루꼬 덕분에 이렇게 또 안하던 정리와 청소를 했네!!
캣타워는 베란다 창가에 있기에 햇빛을 만끽하며 밖을 내다보기에 좋다. 냉장고는 우리 가족의 주요 생활지인 주방과 거실을 내려다 보기에 좋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때면, 냉장고 위에 올라가 물끄러미 내 모습을 지켜본다.
'자꾸 그... 그런 눈으로 보면....(설레잖아!)'
고양이한테 사랑받는 느낌... 내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관찰하는 루꼬 덕에 설거지를 하면서 계속 냉장고 위를 쳐다보며 루꼬와 눈을 마주친다.
렌지대 위 맨 꼭대기에는 우리가 집을 길게 비울 때, 혼자 있는 루꼬에게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혹 사고 치지는 않을까걱정되어 설치해놓은 CCTV가 있었다. 요즘 CCTV는 화질도 좋고 기능도 좋다! 360도 회전하는 CCTV덕에 뒤로 돌려서 냉장고 위에 앉아있는 루꼬를 볼 수도 있다. 루꼬는 저절로 움직이는 CCTV가 신기한지, 빼꼼히 화면을 쳐다보는데.... 그 모습이 마냥 귀엽고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