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꼬는 2023년 4월말 태생으로 추정된다. 2023년 따뜻한 봄의 어느 날 어딘가에서 태어나, 엄마 고양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나의 배에 매일 하는 쭙쭙이와 꾹꾹이를 보면, 아가 때 엄마 젖을 잘 먹고 자랐겠거니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그러던 어느 봄날, 우연한 사고로 하수구 아래로 떨어졌겠지...
그 주먹만하던 아이가 어두컴컴한 하수구에서 살려달라고 목청껏 외쳐, 가까스로 구조됐다. 구조자가 내려준 옷가지를 부여잡고 죽기 직전에 구조된 아주 생명력 강한 녀석이 바로 우리집 고양이 루꼬다.
봄에 태어나, 사고를 겪고 구조되고, 구조자 집에서 치료받고 보호받다가, 우리집으로 입양됐다. 그리고 여름과 가을을 우리집에서 보냈다. 우리집에는 봄과 여름의 경계 쯤에 왔기에, 시원한 베란다가 루꼬의 방이었다. 화장실과 캣타워, 사료와 물 등등 루꼬의 살림살이들은 대부분 베란다에 있었다. 어느 무더운 날엔, 그늘진 베란다 타일을 찾아 가장 시원한 어딘가에 배를 쫙 깔고 엎드려 쉬던 녀석이다.
그리고 한참이 흘러....
겨울이 다가왔다.
루꼬는 겨울이라는 걸 경험해 본적이 단한번도 없다. 생애 첫 겨울이다.
겨울은 매번 성질머리가 급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만족스러운 가을을 만끽할만할 때, 성급하게 불쑥 찾아온다.
10월 말부터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집의 에너지 효율을 위해서 이제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이 온 것이다. 루꼬의 살림살이들을 베란다에서 거실이나 방으로 옮겨줘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먼지 유발자인!! "화장실" 위치 선정이 난제였다. 고민끝에 우리가 쓰는 거실 화장실에 모래 화장실을 옮겨줘보았다. 샤워는 안방화장실에서하면 되니까 큰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손을 씻을 때마다 물을 바닥에 몇방울씩 흘리고, 루꼬는 화장실을 사용하고 모래를 덮을 때마다 모래를 튕겼다. 바닥으로 튄 모래와 물의 콜라보는 예상보다 더더더 강력한 청소 스킬을 요했다. 분명 닦아냈지만, 타일 위에 하얀 모래자국은 닦아낸 자리에 계속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여기는 안되겠다...
결국 거실로 모래 화장실을 옮겨주었다. 먼지가 나지 않는다고 자신만만하게 광고를 해대는 모래를 다양하게 써봐도, 일주일이 넘어가면 여지 없이 먼지를 폴폴 날리기 시작했다. 추워서 환기도 자주 못하는데, 우리 기관지도 생각을 해야지...
두부모래를 한번 써볼까.... 서치한 바로는, 대부분의 고양이가 선호하는 모래는 벤토나이트고, 두부 모래는 고양이가 선호하는 모래는 아니라고 한다. 인간이 편한 모래가, 두부 모래라고 한다.
아... 집사가 편하다니... 한번 써볼까...!!
두부 모래도 잘 쓰는 고양이들이 있으니, 루꼬도 두부 모래에 적응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화장실 하나와 두부 모래 한꾸러미를 주문했다. 기존에 쓰던 벤토 모래 화장실은 원래 있던 베란다에 두고, 실내용으로 두부 화장실을 만들어 주기로 한 것이다.
'두부가 맘에 들지 않거들랑, 추워도 베란다에 나가서 벤토를 쓰렴...'
실외 벤토화장실, 실내 모래화장실... 이렇게 2가지 선택지를 루꼬에게 준 것이다. 따뜻한 실내에서 두부 화장실을 쓸 것인가, 추운 베란다에서 벤토 화장실을 쓸 것인가!
지금까지 반년간 쓴 화장실 경험으로, 좀 더 높고 점 더 넓은 화장실을 주문했다. 배송 온 화장실 박스에 11살 아이가 들어가 앉아, '자기가 선물'이라고 말하며 서프라이즈 놀이를 한참 할 정도로 큰 박스에 담겨져왔다. 두부 모래는 정말 두부모양으로 네모 반듯하게 포장되어 왔다. 새 화장실이 매우 컸으므로, 두부 모래를 3봉지나 뜯어서 넣어주었다.
두부 모래를 처음 본 루꼬는...
이걸.... 사료라고 생각했나보다.
두부 화장실엔 들어가지 않고 모래를 손(앞발)로 막 파헤쳐서 밖으로 빼내더니 먹으려 들었다. 아마 알갱이 몇개 정도 먹었을 거다. 두부 모래는 식재료인 콩비지가 원료라고 한다. 먹어도 크게 지장은 없을 것 같았지만, 먹는 거 아니라고 계속 얘기는 해주었다. 물론 얘기한다고 한번에 알아듣는 루꼬가 아니지! 두부가 깔린 화장실에 들어가보라고 넣어줘도 금방 나와버렸다. 역시... 두부 알갱이가 발을 아프게 한다는 게 사실인가보다. 익숙하지 않은 거겠지...
사람도 뭐... 건강에 좋다는 지압판 처음 밟을 땐 엄청 아프니까!!
혹시나 싶어서 베란다 문을 한뼘쯤 열어두고 (두부 모래가 정말 싫은데, 급할 땐 베란다로 나가 벤토 화장실을 쓰라고) 며칠 지켜보았다. 역시나 처음 이틀 정도는 벤토만 사용했다. 두부화장실은 가끔 호기심에 들어가서 파헤쳐놓고 뒹구는 용도로만 썼다.
그래도 역시 시간이 답이다. 루꼬는 두무 모래 3일차에, 두부 화장실에도 감자(쉬야)를 만들어놓았다.
녀석... 이제 두부 화장실 용도를 알아냈구나!!!! 이제 맘놓고 베란다 문을 닫아놔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 두부 모래 화장실 사용법을 알았으니, 밤에는 베란다 문을 닫고 잤다. (이말은 즉, 벤토 화장실 문 잠김), 아침에 환기하느라 베란다 문을 열어놓았을 때, 루꼬는 마치 산책을 나가듯, 베란다로 나가 벤토에서 시원하게 응가를 보고 들어왔다. 두부는 쉬야, 벤토는 응가 화장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걱정했던 혹한의 추위가 왔다. 이젠 정말 추워서 잠깐도 베란다 문을 열어놓을 수 없어졌다. 루꼬는 베란다에 나가면 발이 시려워서 앞발을 들어 툭툭 털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당황스러운 추위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루꼬 본인도 추운 벤토보다 따뜻한 두부를 선호하게 되었다. 어느새 응가 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용변을 두부 화장실에서 볼 수 있게 완벽 적응되었다! 두부 모래는 밖으로 튀어도 청소 관리가 벤토보다 훨씬 쉬웠다. 두부에서도 먼지가 안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벤토보다는 참을만 한 것 같다.
이렇게 루꼬는 처음 맞는 계절에, 실내 생활과 두부 모래에 적응했다. 밤마다 보이는 야생성은 거실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우다다 뛰어나니는 걸로 분출하고 있다. 그리고 거실과 언니방에 있는 서랍들을 어떻게든 열어서 그 안에 물건들을 꺼내가지고 물어뜯어놓는걸로 사냥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입양 초기엔 같이 자려고 시도하면 할퀴고 물어서 동침을 못했었는데, 이젠 불끄고 잠잘 때면, 옆에 와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게 됐다. 이 겨울 이 추위가 우리 사이를 더 가깝게 해준 것이다.
ps. 겨울 들어, 루꼬가 가끔씩 예상치 못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의아했다.
갑자기 왜 저기서 자고 있지?
... 바닥을 만져보고 이해했다.
보일러가 모든 바닥을 공평하게 따뜻하게 해주지 않는데, 그 와중에 루꼬가 자리 잡고 앉아있는 곳들이 제일 따뜻한 자리였다!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