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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코믹 Feb 11. 2023

r>g, 자본이 노동을 압도한다

불평등 이해하기: 노동분배율-(2)

우선 우리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살펴본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 책을 펴내며 경제학계의 대스타로 떠오른다. 한 때 미국의 대학에서는 책의 핵심 이론인 r>g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사실 책이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위한 개념들을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피케티는 노동분배율이 낮아지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을 자본주의의 시스템적인 경제구조로 인한 결과라고 말한다. 앞서 <노동의 몫이 줄어들고 있다 https://brunch.co.kr/@easycomic/35> 글에서 알 수 있었듯이 생산량 중 노동으로 분배되는 비율이 줄어드는 현상이 전 세계 선진국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피케티는 어떤 구조를 말하는 것일까?



자본과 자본분배율 이해하기


우선 노동분배율과 자본분배율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보자. 앞서 작성한 글을 참고하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한 나라에서 생산물이 생산되는데 투입되는 재료는 노동과 자본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산한 생산물은 생산활동에 기여한 자본과 노동으로 분배된다. 빵 10개가 만들어진다면 대략 노동을 제공한 노동자에게는 7개가, 자본을 제공한 자본가들에게는 3개가 분배된다. 이때 빵 10개 중 7개가 노동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노동분배율 70% (혹은 0.7)가 되고 자본가에게 빵 10개 중 3개가 분배되었기 때문에 자본분배율 30% (혹은 0.3)가 된다.


예를 들어 10만 원만큼 빵을 만드는데 오븐, 주방도구 가계 등 필요한 자본이 60만 원이라고 생각해 보자. 오븐, 주방도구, 가계가 차지하는 건물을 제공한 자본가들은 자본을 제공한 대가로 생산물 10만 원의 일부인 3만 원을 소득으로 가지고 가지고 간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60만 원이라는 자본을 가지고 3만 원이라는 자본 소득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자본수익률은 3/60 = 5%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보통 r이라고 표기한다. 정리해 보면 자본가들은 60만 원이라는 자본을 제공하고 빵을 10만 원만큼 생산해 그중 3만 원을 자본소득으로 분배받는다. 이때 자본가들의 자본 수익률 r은 5%가 되는 것이고 생산량 중 자본으로 분배되는 자본 분배율은 30%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본 수익률을 간단히 이자율 정도라고 생각하고 이해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우리는 10만 원의 빵을 만들기 위해 60만 원의 자본이 필요했다. 그러면 빵이라는 생산물을 만드는데 6배의 자본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자본과 생산량의 비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인데, <자본 60만 원/생산량 10만 원>이라고 표현하고 자본/생산량의 비율이 6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물을 생산하는데 생산량보다 6배의 자본이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생산량 대비 자본에서 나오는 수익이 생산량 중 자본이 가져가는 몫인 자본 분배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예시에서 60만 원 자본으로 5%의 수익을 얻어 생산량인 빵 3만 원만큼을 소득으로 가져간다(60만 원 * 5%). 그런데 생산된 빵이 10만 원이었기 때문에 이 3만 원은 생산량 중 30%에 해당한다. 달리 말해 생산량 대비 자본의 양에 자본의 수익률을 곱하면 생산량 중 자본의 몫으로 돌아가는 자본 분배율이 되는 것이다.

(예 자본/생산량=6 * 5% = 30%)  



생산량 대비 자본의 비율이 구조적으로 증가한다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앞서 말한 자본/생산량의 비율이 일정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경제학자 칼도어의 확고한 사실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Kaldor's stylized fact). 수많은 경제학 이론 역시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피케티는 지난 150년가량의 역사적 데이터를 들춰내면서 실은 이러한 사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기에 생산량 대비 자본의 비율은 세계 대전을 전후로 급격하게 하락한 후에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r>g, 즉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라는 원리가 담겨있다.

경제 성장은 생산량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빵을 만드는 나라에서 생산량은 빵이기 때문에 생산되는 빵의 양은 해마다 경제성장률 g만큼 증가한다. 반면 자본으로 얻을 소득을 전부 사용하지 않고 저축한다면 자본은 r의 속도로 증가한다. 60만 원의 자본을 투자해 5% 수익은 3만 원을 얻었을 때 이 3만 원을 소비하지 않고 전부 저축한다면 자본은 63만 원이 될 것이다. 그다음 해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저축을 한다면 자본은 5%의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자본수익률보다 낮게 일어나 생산물은 그보다 낮은 속도로 늘어난다. 가령 경제 성장률이 3%로 증가한다면 자본 수익률이 5%이기 때문에 이 차이만큼 앞으로 계속 두 비율이 벌어질 것이다. 즉 자본/생산량 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게 된다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자본으로 얻는 수입을 모조리 저축할까? 앞선 논리에서 자본이 r의 속도로 증가한다는 것은 새로운 수입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모조리 저축한다는 가정 하에 성립하는 논리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본으로 얻은 수입을 사용하고 소비한다. 만약 이 소득을 모조리 사용해 버린다면 자본의 양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자손이 아니라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기 전에 모아둔 자산을 전부 소비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생 아끼며 소비하지 않고 죽는 인간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들 중에는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한 이론들이 많다.

반면 피케티는 역사상 자료를 살펴보니 사람들이 소비하기보다는 맹목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자손들에게 남겨준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본으로 얻는 수입 중 조금만 소비하고 전부 저축을 하기 때문에 여전히 자본이 증가하는 속도가 생산량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 중 대부분은 그 사람이 일생에 축적한 자본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본이다. 이 지점은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 많은 부분 생각거리를 준다.




자본과 노동의 대체탄력성이 낮다


사실 생산량 대비 자본의 양이 많다는 사실 그 자체는 생산량의 분배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10개 생산된 빵이 노동과 자본으로 몇 개 분배되느냐가 관심 사항이지 생산되는 빵 대비 오븐의 수는 (적어도 지금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만약 자본의 가치가 60만 원이 아니라 80만 원이 되더라도 10만 원의 빵 중 여전히 3만 원만큼만 자본으로 분배된다면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생산량에 비해 자본의 양이 많다면 자본의 수익률은 떨어질 것이다. 자본의 양이 많아질수록 자본이 기여하는 생산성 (한계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오븐 한 개에서 두 개가 되었을 때 늘어나는 생산량보다 오븐 백개가 있는 상황에서 한 개가 더 늘었을 때 추가로 늘어나는 생산량이 더 적어질 것이다. 이론적인 배경이 있지만 자본의 수익률은 자본의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 그렇다면 자본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자본의 생산성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10만 원 빵을 만드는데 들어간 자본이 60만 원일 때 자본의 수익률 r이 5%였지만 자본이 80만 원이 된다면 자본의 수익률 r은 5%보다 작아질 것이다. 가령 수익률이 3.75%로 떨어진다면 여전히 생산량이 자본으로 돌아가는 몫은 30%가 될 것이다. (자본/생산량 80/10 * 자본 수익률 3.75% = 30%)

만약 자본의 양이 증가하면서 자본의 생산성이 확 낮아지는 바람에 자본 수익률 r이 확 낮아진다면, 가령 2%로 낮아진다면 오히려 자본으로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게 된다. (자본/생산량 80/10 * 자본 수익률 2% = 16%). 반대로 자본이 증가했는데 자본의 생산성이 별로 크게 떨어지지 않아 자본 수익률 r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생산량 중 자본의 몫으로 돌아가는 양이 더욱 커질 것이다.


피케티는 여기서 역시 자본의 양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여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다). 자본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자본의 수익성이 변하는 것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답은 자본과 노동이 얼마나 쉽게 대체되는가에 달려있다. 빵을 만드는데 자본 대신 노동을 많이 투입해서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고 자본의 양을 늘려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과 노동을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떨어져 극단적으로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오븐 하나에 일정 수 고정된 작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자본이 늘어났을 때 자본의 수익성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오븐이 늘어나봐야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노동과 자본이 완전하게 대체될 수 있어 사람이 없어도 오븐만 있으면 생산할 수 있다면, 오븐이라는 수익성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븐 한 개일 때 빵 10개를 만들고 두 개일 때 빵 20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한다.


여기에서 피케티는 노동과 자본의 대체가 쉽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경제학 용어로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량에 비해 자본이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자본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산량 중 자본으로 돌아가는 몫이 점차 커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처음 물음이었던 생산량의 자본 분배율이 점점 커질 것이다. 결국 생산물이 노동으로 돌아가는 비중이 줄어들고 자본으로 돌아가는 몫이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피케티는 옳았는가?


<21세기 자본> 책이 출간되고 경제학계의 관심은 대단했지만 동시에 비판도 적지 않았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향후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학 책으로 자기매김 할 것'이라고 극찬한 반면 대런 아세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자본주의의 일반 법칙을 추구했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우선 몇 가지 비판이 가능한데, 첫 번째로 피케티가 자본(capital)을 부(wealth)와 동일하게 두고 시장가격으로 이를 측정했다는 점이다. 사실 자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큰 논쟁거리일 수 있는데, 시장가격으로 부를 측정하고 이를 자본이라고 정의한다면 주식 시장, 주택 시장 등 시장의 상황에 따라 부의 가치가 널뛰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 자본을 시장가격 대신 회계상 장부가로 계산한다면 자본/생산량의 비율이 대체로 일정했다는 것이 연구로 밝혀졌다.

두 번째로는 노동과 자본이 쉽게 대체된다는, 즉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라는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거시적인 시대에 따른 이 둘의 대체탄력성은 연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대 안에서 미시적으로 살펴본 노동과 자본의 대체탄력성은 거의 전부 대체탄력성이 1보다 작거나 같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즉 자본과 노동이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생산량의 비율이 높아지더라도 생산량이 자본으로 돌아가는 몫이 커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피케티는 자본/생산량의 비율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변하는 자본 수익률 r의 추이를 보았을 때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라는 설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변론하지만 크게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와 별개로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은 경제학에서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주류적인 논의 한가운데로 가지고 온 공을 세웠다. <21세기 자본> 책이 출간된 이후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의 비판과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더 궁금하다면 <애프터 피케티>라는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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