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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손톱 Aug 27. 2024

간호사가 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배워요? - 1

01. 프랑스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나는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했고 지금은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배우는 학생이다.

당사자에게도 매우 갑작스러운 공간적, 신분적 전개인 것이, 내가 프랑스 땅을 밟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올 계획은 없었기 때문이다.

더 전으로 돌아가서 병원에 사직서를 냈을 때는, 내가 프랑스에 가리라는 계획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프랑스에 가게 되었나?

그리고 간호학과 지리학은 대체 무슨 사이이길래, 그 멀리까지 가서 지리학을 배우며 대학생 2회차의 삶을 시작하는 걸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기억도 안 날 것 같아서 차근차근 의식의 흐름을 타고 올라가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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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4학년의 여름방학 무렵은 아주 중요한데, 많은 병원들이 신규간호사를 채용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나도 남들처럼 스터디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자소서도 울면서 쓰고, 면접도 다닌 결과, 원하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합격 통보를 받기 전에는 '나 같은 놈을 누가 뽑아주지?'라고 생각했고 최종면접까지 갈 길이 너무 막막해서 울기도 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항상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까짓 거 별 거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게 첫 입사한 병원을 1년 조금 넘게 다녔고 건강 이슈로 그만두게 된다. 3교대와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 패턴 때문에 몸에 병이 들었고 심장이 이 같은 행태에 화가 난 듯이 지맘대로 쿵쾅쿵쾅 뛰었던 것이 주요 문제였던 것은 맞지만 다른 모든 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매일 출근할 때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긴장감에 휩싸여 지하철 안에서 공부를 하던 것과 위급한 상황 속에 날카로워진 분위기, 그리고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의 그 괴로움. 그 괴로움을 느끼며 '내가 이런 고통스러운 마음을 굳이 느끼고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미친 듯이 바쁜 매일과 일을 마친 뒤 '내가 까먹고 안한 건 없나?'라는 걱정속에 성취감 대신 차오르던 찝찝함의 나날들. 그런 것들이 몸을 더욱 힘들게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원래라면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지지부진하게 몇 달을 고민하며 결정을 못 내렸을 테지만, 건강 이슈 덕에 결정도 빨랐고 퇴사 면담을 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알릴 때도 오히려 수월했다.

퇴사를 하고 본가에 갔다. 엄마가 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왔는데 너무 홀쭉해진 내 모습을 보며 엄마가 울먹거렸다. 엄마가 울먹거리는 모습은 또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 나는 매일 내 모습을 보니까 체감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졌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홀쭉해진 몸은 엄마집에서 엄마의 보살핌 아래 집밥을 되는대로 먹어치우며 다시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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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하고 한 달 뒤, 나는 어느 공기업에서 4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다. 거의 최저시급에 달하는 돈을 받으며 일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굉장히 값진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간호사로 일할 때 나는 9to6 근무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일단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할 수 있으니 좋고, 6시에 퇴근을 하면 매일 취미나 자기 계발에 한두 시간 정도 할애할 시간이 있고, 그러면 확실히 삶의 질이 높아지겠구나 하는 생각.

근데 그러기는 개뿔, 9to6라고 하면 회사에 체류하는 시간이 점심시간 포함 9시간인 셈인데 이게 끝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도 포함해야 하고 조금 더 오버하자면 출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왕복 2시간 조금 안 되는 거리였으니 일단 출퇴근 시간만 합쳐도 회사를 위해 바치는 시간이 11시간인 셈이다. 나의 하루는 24시간이고 적정 컨디션 유지를 위해 8시간을 잔다고 하면 내게 남은 건 16시간인데 여기서 11시간을 빼면 5시간 남는다. 그럼 나는 이 다섯 시간을 잘 쪼개서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어야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설거지를 해야 하고, 방청소를 그래도 돼지우리는 아닐 정도로 해두어야 하고, 살려면 운동도 좀 해줘야 하고, 이러면 유튜브 볼 시간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고급 에너지는 아침-낮 시간에 회사에 다 써버리고 얼마 남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샤워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하려니 효율도 안나거니와 내 삶에 할애할 에너지를 엄한 곳에 쓰고 온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이 9to6에 대한 환상이 다 깨졌다.

더불어 너무 지루했다, 일이. 그래서 너무 여유로웠는데, 너무 지루했다. 직장 내 분위기도 좋고, 팀원들도 팀장님도 너무 좋고 업무가 바쁘지도 않고 매일 칼퇴를 하고 똥타임을 20-30분을 가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좋은 환경이었지만 일이 많지 않았고 여유시간이 너무 많았다. 그게 좋은 게 아니라 불만족스러워졌다. 당연히 이전 병원의 토 나올 것 같은 미친 강도로 바쁜 환경과는 비교불가할 정도로 훨씬 양반이지만 이렇게 1년은 살아도 5년, 10년, 15년은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곳에서 고뇌의 4개월을 보낸 뒤, 이런 생각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겠다, 찾아야만 한다.

9시간을 회사에서 머무르고 11시간 이상을 회사에 들인다고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 일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을 것이고 퇴근 후 취미를 통해 에너지를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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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여기저기 쑤셔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코딩을 배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좋아하는 일은 찾는 것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안 찾아지는 것을 찾는답시고 시간을 날려버리면 면접장에서 공백기간에 뭐 했냐고 물어볼 때 방어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대안을 찾았다.

근무 시간이 적은 일을 찾고, 그대신 취미로 활력을 찾자.

근무 시간이 줄어야 취미를 즐길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회사는 8시간 일할 사람을 찾았고, 취미는 대체 어떤 게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유튜브 보기, k-pop 듣기 이런 걸 가지고 취미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말하는 취미는, 시간을 거듭하며 계속해나갈수록 능숙해지고 실질적으로 뭐가 남는 취미를 말하는 것이었지 단순히 시간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어를 깔짝거리기 시작했지만 실력이 초급이었던 데다가, 일에 치여서 퇴근한 뒤 '프랑스어 공부'를 취미로 하는 그런 위대한 사람은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도 안 드는 자취방에 누워서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었더랬다. 시험에 연이어 낙방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원론적인 고민을 20대 중반에 껴안고 있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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