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쿙가 Nov 24. 2022

춘천 닭갈비

춘천 사람들은 맨날 닭갈비만 먹냐

자신 있게 그랬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은유적인 표현이지만 그 정도로 자주 먹었다. 강원도 사람은 감자만 먹냐는 말에는 기분이 나빠져도 닭갈비는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 때는 닭갈비가 1인분에 4000원이었고 그 당시에도 저렴한 편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행사 끝나고 남은 몇몇 애들을 따로 사주기도 했고, 생일파티를 닭갈비집에서 하는 애도 있었고, 부모님이 닭갈비 집에서 일하는 애도 있었다. 가족끼리도 자주 외식하러 갔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닭갈비집에 가기에는 많이 비싸졌다. 닭갈비 집 알바는 고되다고 하니 불만은 없다.


마트 닭갈비도 맛

춘천에 있는 대부분의 마트에서 닭갈비 양념과 닭고기를 세트 판다. 거기에 고구마, 양배추, 우동사리, 깻잎만 추가로 사서 프라이팬에 볶아먹으면 된다. 깨와 참기름은 먹기 직전에 살짝 뿌려야 한다. 이렇게 집에서 직접 손질해서 먹으면 맛이 더 깔끔하다. 춘천 집에는 심지어 가정용 닭갈비 팬이 있어서 닭갈비 양념에 밥 까지 비벼 먹을 수 있다. 설거지가 힘들어서 자주 꺼내진 않지만 춘천 밖에서 손님이 올 때면 집 닭갈비를 해주며 자랑을 하곤 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도 춘천 사람이다.



비건 닭갈비

독일에 오고 나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닭갈비 맛을 포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춘천에서는 닭갈비 소스 구하기가 너무 쉬워서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마늘, 깨, 참기름만 있으면 그 맛이 난다. 굳이 콩고기를 찾아서 넣을 필요 없이 닭갈비 만들 듯하되, 닭고기 대신 양배추와 우동사리를 더 많이 넣으면 된다. 이미 춘천 토박이 세 명한테 검증받은 맛이다. 닭갈비가 맛있는 건 닭고기 때문이 아니라 양념이 베인 양배추와 우동사리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비빔밥은 알아도 닭갈비는 모르니 이색 요리로 추천한다. 깻잎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색을 내려고 로켓 샐러드(Rucola)를 썼다.



닭갈비 골목

명동 닭갈비 골목도 맛이 나쁘지는 않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거기 가서 안 먹는다. 춘천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요즘은 어디가 맛있다더라!! 하고 명동과는 멀리 떨어진 어느 동네 한 구석에 있는 닭갈비 집으로 가는 편이다.


나는 후평동에서 자라서 어른들이 데려가는 곳은 항상 인공 폭포 앞 닭갈비 거리였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는 단골집은 4000냥 닭갈비였는데 야채와 동치미가 무제한 리필이었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곳이 없어지고 나서는 아는 분이 일 하시는 1.5 닭갈비를 갔고 어쩔 때에는 우성 닭갈비를 갔다.



생 양배추

어렸을 때라 그런지 닭갈비 집에 가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소금장이었다. 참기름에 담긴 소금이 어찌나 맛있던지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찍어서 먹다가 나중에는 프라이팬에 이제 막 들어간 생 양배추를 꺼내다가 찍어먹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절대 그렇게 안 먹는데 이상하게 닭갈비집만 가면 그 조합이 너무 끌렸다. 그래서 닭갈비집에 가면 엄마가 늘 서빙하시는 분들한테 생 양배추를 그릇에 따로 담아달라고 따로 주문을 넣었다. 다들 애가 왜 생 양배추를 왜 먹는지 의아해해서 늘 두세 번 설명해야 했던 것 같다. "애가 소금장에 찍어먹는 걸 좋아해요." 나는 생 양배추를 기다리면서 어른들이 그 맛을 왜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닭갈비 양념이 잘 묻어난 흐물흐물한 양배추가 더 좋다. 그 양배추를 상추쌈에 한 번 더 싸 먹으면 아삭함까지 더해져서 진짜 최고다.



춘천에 간다면

채식주의자라 더 이상 닭갈비집에는 가지 않겠지만 내년에 집에 가면 닭갈비용 팬에다가 비건 닭갈비를 잔뜩 만들어 먹을 거다.


작년에는 엄마랑 아빠, 이모, 친구들이 자주 간다는 춘천 떠오르는 맛집들을 돌고 그 외에는 너무 그리웠던 집밥을 먹느라 바빴다. 청국장, 막국수, 감자 옹심이, 큰 이모가 만들어주는 고추튀김, 집 김치, 햄 빼고 주문한 고구마 피자, 오빠가 양은 냄비에 끓여준 김치찌개, 해산물 안 들어간 순두부찌개, 찰진 밥에 뿌려먹는 돌자반,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생두부.


아 배고프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 복 넘치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