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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Dec 11. 2024

오늘에 대한 추억

기대감이 1도 없는. 그럼에도 운명이었던..


우리 단과대학의 건물은 대학 중에도 외형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화려한 외형과 달리 입구는 계단 아래에 마치 숨겨져 있는 듯 보인다. 덕분에 입구부터 해가 거의 들지 않는 편이었다. 산자락을 이용하여 지하로 이어진 연습실과 강의실들은 늘 어둑하고, 서늘하게 느껴졌다. 나는 건물에서 십 미터쯤 떨어져서 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친구들이 나오는 모습이 마치 개미가 개미굴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입구로 들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나 역시도 개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 후 학교를 갈 일은 거의 없었다.

작년에 멀리서 온 친구가 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가게 되었다.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상징적이고 위엄 있던 크라운 관 건물 앞의 반토막 난 노천 운동장엔 건물이 높게 솟아 있었다. 의학 관련 건물이라고 한다.

‘저 건물이 돈을 벌어주겠지.. 우리 과는 돈이 안되지..‘

건물은 옛날 그대로인 것 같은 창틀과 낡은 모습인데 아무나 실내로 들어갈 수 없는 잠금장치가 있는 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린 아쉬운 마음에 보안이 강화된 개미굴 속을 유리문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해가 들지 않아 서늘한 기분이 드는 개미굴 같다고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고,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이 개미가 상상이 되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개미 같음은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단순한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12월 11일 개미굴 속에서 빠져나오던 생각이 난다.

대학 1학년 마지막 과목의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났다.  

짧은 답안이 필요한 두 문제를 지나면 긴 서술문의 답안을 써내야 하는 대학교의 시험은 한 학년을 마치는 순간에도 익숙지 않았다.

신경이 쓰이고, 참 어려운 글쓰기란 생각이 들었다. 한 명, 두 명 빠져나가면 손글씨가 흔들렸지만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답안을 쓰는 일에 공을 들였다. 퇴고를 거칠 수 없음이 불안했고, 그것에서 오는 짜릿함도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개의 예상 문제를 뽑고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을 했건만 심장이 두근대기는 마찬가지였다. 4년 내내 희한하게도 언제나 전공보다 교양과목과 교직 과목의 성적이 좋게 나왔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교직과목 중 프로이드에 대한 심리학 과목이었다.

그날도 회색빛이 도는 시험지를 가득 채우고, 90명에 가까운 아이들 중 서너 명이 남았을 때 교실을 나왔다. 터덜터덜..


“으.. 끝났다!”

“그사이야, 넌 맨날 뭘 그리 많이 쓰냐? 꼭 마지막에 나오더라. 오늘 뭐 해?”

“아, 난 약속 있어. 나중에 보자. 방학 잘 지내.”


친구들과 헤어지고, 바라본 한편에 나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내 중학교 친구 민이와 후줄근해 보이는 키 큰 남자 사람.

민이가 활짝 웃으며 다가와 내 팔짱을 끼고 말한다.

“아유, 내가 너희 때문에 정말 지겹다. 지겨워. 시간 없어. 빨리 가자! “


이윽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곳의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커피숖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얼마 전 파마한 꼬불한 머리가 신경 쓰였다.

“내 머리 이상하지?”

민이가 나를 쳐다보는 사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워요..”

우리의 첫 대화다.

어쩌다 보니 무려 반년을 끌어온 우리의 첫 만남. 첫 대화였다.

민이는 왜 그렇게 지겹도록 우리를 만나게 하려 했는지 모르지만 소개팅에 대한 별 마음이 없었다. 나도 그도..

여자는 갓 볶은 파마머리에 고등학교 때부터 입던 낡은 회색 코트를 입었고,

남자는 등록금 동결 시위로 밤생 농성 후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타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미안하다고 했다.


12월 11일..

서로에게 조금은 미안한 외모로 만나게 된 우리 부부의 시작이었던 37년 전 추억의 날이다.




2024년 12월 11일.

오늘은 대통령 탄핵에 대한 두 번째 발의안을 상정하는 날이다.

슬프고 되돌리고 싶지 않은 추악한 역사가 남겨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히 빛나는 기억이 될 한강의 역사도 남겨지고 있다.


우리 국민의 촛불은 진화했다.

추운 날씨에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들고 밤을 밝히는 멋진 젊은이들을 보니 심장이 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의 간절한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 정정 *

탄핵 발의는 연기되었지만 찬반 투표는 14일 (토요일)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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