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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Jan 05. 2022

교정사회

젓가락질을 교정 중이다. 한동안 잊다가 다시 마음먹게  것은 친구들과 찍은 동영상  나의 젓가락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갈치조림을 먹다가, 바르게 잡는 것이  불편해서 그냥 먹을까 하다가. 그래도 해봐야지 하고 갈치를 바르고 끝끝내 식사를 마쳤다. 평소 보다 길어진 식사시간에 갈치 살이 온통 으스러져있었다.


부모님은 그러셨다. 언니도, 오빠도, 정작 본인들도 모두 ‘바르다’라고 정한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나의 젓가락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다. 우리 가족에게 젓가락질은 먹기 위한 방법이었고 잘 집고 잘 먹으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젓가락질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외부인 들을 통해 성인이 되고서야 알았다.


방법이 ‘다른’ 젓가락질이 눈에 띄었나 보다. 젓가락질을 보고 “역시 막내는 막내네”라고 말하던 이도 있었고(본인도 그래서 뒤늦게 교정을 했다고 했다) 이제는 교정을 해야겠다던 어른들도 있었고, 이제 자기는 교정을 했다며자랑스레 말하던 사람도 있었고. 아니 근데 저 잘 집는다니까요? 울컥하다가도 어른과의 식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식사에서 괜히 위축되는 나를 보며 나를 위해서라도 교정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동료 J도 자기는 지금은 젓가락질을 잘한다고 말하며. 이전에는 다르게 잡았는데 어느 날 교사가 “젓가락을 저렇게 잡는 얘는 J밖에 없네”라는 말에 상처를 받고 교정을 시작했다고 했다. 세상에는 단점을 가지고 너를 깎아내리거나 비판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교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떠돌던 글이 떠오른다.


 지금은 약간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바르다’라고 칭하는 방법을 연습하다 이전의 방법이 어색해졌다. 그렇다고 ‘바르다’라고 칭해지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이것도 저것도 잘 집을 수 없게 된 애매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 나는 자꾸만 으스러지는 갈치조림을 두고 정말 교정되어야 할 것이었나. 그대로 살면 안됐을까 하는 여러 생각을 함께 먹어야 했다.


다름이 거슬려 지적하는 사람도, 그를 듣고 위축되는 나도 딱해 보인다. 교정되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지적했던 당신들도 뭔가를 교정되어야 할 거예요. 이미 됐을지도 모르고요. 그냥 각자의 방식대로 편안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요.


곧 갈치조림을 편하게 발라 먹을 수 있을 날은 오겠지만 그날 또한 씁쓸할 것이다. 이건 틀린 것이 아니고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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