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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Jan 05. 2022

바다와의 재회

2 만에 만난 어제의 제주 바다는 성이 나있고 매몰찼다. 사람들이 눈에 반한  질투했으려나. 내리는 눈송이마다 성급히 녹여버리고 세차게 파도를 쳤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해지고 제법 온순해졌다. 멀리 평온한 얼굴로  있게도 파도를 친다. 수평선은 고요하고 파도는 역동적이다.  얼굴의 바다, 그게  좋다.


파도에 대한 기억 하나가 있다. 10살쯤 됐을까 그때 내 기억으로는 정말 집채만큼 하나 파도였는데 저 멀리 커다란 파도가 오는데 달아날 길이 없다. 엄마가 내 뒤서 파도를 등지고 나를 꼬옥 안았다. 엄마를 꽉 붙잡고 두 눈을 꼭 감았는데, 곧 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세차게 내리쳤다. 선글라스는 날아가고 엄마와 나만 그 자리에 물을 뚝뚝 흘린 채 남았었지. 그리고 그날 밤에 이불에 실수를 했다. 그 뒤로 아직도 물을 무서워한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그날 파도가 진짜 심하기는 했지.” 하고 답했다. 그날의 파도가 진짜 집채 만했을 리는 없을 테고 어린 나의 느낌이었으리라, 그때의 나의 작은 세상에는 뭐든 커다랗게 보였으니까. 엄마의 품이 그 커다랗던 파도를 다 막아줄 줄만 알았으니.


지금도 뭐든 커다랗게 덜컥 겁먹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조금은 견주어 볼 수 있게 됐다. 집채만 한 파도보다는 나를 지켜주려 했던 온기와 제아무리 커다란 파도라도 지나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2년 전 이곳에서 낫지 않을 것 같이 시렸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2 만에 만난 바다에게 안부를 묻는다.  있었니. 바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려 답한다. 바다는  있습니다.라고. 그럼  있지 못한 것은 어디인가 돌아보다가 나와 마주쳤다. 거울을 다가 다행이다 하고. 저도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적어 띄웠다.


곧 수영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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