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만난 어제의 제주 바다는 성이 나있고 매몰찼다. 사람들이 눈에 반한 걸 질투했으려나. 내리는 눈송이마다 성급히 녹여버리고 세차게 파도를 쳤다. 오늘은 바람도 잔잔해지고 제법 온순해졌다. 멀리 평온한 얼굴로 힘 있게도 파도를 친다. 수평선은 고요하고 파도는 역동적이다. 두 얼굴의 바다, 그게 또 좋다.
파도에 대한 기억 하나가 있다. 10살쯤 됐을까 그때 내 기억으로는 정말 집채만큼 하나 파도였는데 저 멀리 커다란 파도가 오는데 달아날 길이 없다. 엄마가 내 뒤서 파도를 등지고 나를 꼬옥 안았다. 엄마를 꽉 붙잡고 두 눈을 꼭 감았는데, 곧 꼬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파도가 세차게 내리쳤다. 선글라스는 날아가고 엄마와 나만 그 자리에 물을 뚝뚝 흘린 채 남았었지. 그리고 그날 밤에 이불에 실수를 했다. 그 뒤로 아직도 물을 무서워한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그날 파도가 진짜 심하기는 했지.” 하고 답했다. 그날의 파도가 진짜 집채 만했을 리는 없을 테고 어린 나의 느낌이었으리라, 그때의 나의 작은 세상에는 뭐든 커다랗게 보였으니까. 엄마의 품이 그 커다랗던 파도를 다 막아줄 줄만 알았으니.
지금도 뭐든 커다랗게 덜컥 겁먹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조금은 견주어 볼 수 있게 됐다. 집채만 한 파도보다는 나를 지켜주려 했던 온기와 제아무리 커다란 파도라도 지나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2년 전 이곳에서 낫지 않을 것 같이 시렸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았고. 보란 듯이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2년 만에 만난 바다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있었니. 바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빌려 답한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라고. 그럼 잘 있지 못한 것은 어디인가 돌아보다가 나와 마주쳤다. 거울을 보다가 다행이다 하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적어 띄웠다.
곧 수영을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