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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Jan 04. 2022

입김

우연히 간 공간의 모습이 꼭 옛 집 같아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돈은 없지 식구는 많지. 넓은 집을 찾다 보니 살게 된 집이었다. 마루고 천장이고 온통 나무로 된 집이었는데 그게 좋았고 그 덕에 마루에는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마루에 입김이 난다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엄마를 아프게 하곤 했다.


밤이면 쥐들은 경주를 했다. 다다다다다. 그 소리를 들으며 몇 마리쯤 될까 세어보기도 하고 걸을 때마다 나는 삐거덕 소리가 좋아 몇 되짚어 움직여 보기도 했다.


여름에는 높은 곳 넓은 마당에 시원한 집. 겨울에는 높고 넓게 추운 집. 겉보기에는 원목들로 근사해도 속은 오래돼서 곪은 그런 집이었다.


우리 식구 집 사기 전까지 한사 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마루에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 오빠가, 방에는 핸드폰을

하고 누워있는 언니가 있었다. 아빠는 그때도 바빴고 엄마는 어땠더라. 어쩌면 집처럼 우리 가족도 각자의 아픔으로 곪아있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그 집에서 살았다. 철없고 자유분방 때를 모두 그 집에서 보낸 셈이다. 시간 개념 없이 해리 포터와 원피스를 줄기차게 봤다. 생각 없이 살던 나. 참 별것 안 하면서 살았네. 그 집을 떠날 때 철없음을 허물 벗듯 벗어놓고 나왔다. 20살이었다.


좋았던 것도 없는데 이게 뭐라고 그립나. 언니야, 오빠야 같이 살던 춥지만 춥지 않았던 그때가 그립나. 같이 산다는 게 좋았나 보다. 몇 발자국 걸으면 볼 수 있다는 게. 그리고 그런 존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쩐지 허전하고 낯선 일이다.


방 한 칸씩 꿰차고 각자의 아픔을 가졌던 집

그 속에 철없는 막내 노릇하며 어리광 부리던 집


그 집은 허물어졌다. 그리고 새 빌라가 세워졌다. 집도 시절도 낡은 것은 사라진다. 언니는 벌써 아이가 5살이 됐고 오빠는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 나도 일을 시작한 지 4년이 됐다.


모자랐던 방 세 칸이 이제는 한 칸 남는다. 마루까지 개별난방을 틀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끔씩 너무 추운 것은 왜일까.


더는 입김도 나오지 않는데, 쥐 소리도.

삐거덕 거리는 바닥 소리도 듣지 않아도 되는데.


입김이 나온다며 철없게 엄마 마음 아프게 했던 언니와 오빠랑 같이 진짜라며 까르르 웃던 그런 일도 이제는 없는데  이렇게 추운 건지 이상하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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