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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Jan 02. 2022

앤트러사이트

낡은 공장을 개조한 공간의 음악과 컨베이어 벨트의 끼익- 거리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제주에 있는  틀어 사이트는 어릴   그림자 형제 속에서 나올 법한 공간이다.


지붕의 판자를 중간중간 들어낸 덕에 채광이 좋다. 천장 위로 컨베이어 벨트가 계속 돌아가고 그 아래로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서울에서도 그렇고 ‘앤트러사이트’ 카페를 좋아한다. 디자인, 커피의 향, 음향, 자연 심지어 직원까지도 공간의 일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 한림점에는 희한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먹는 슈톨렌이 있다. 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슈톨렌을 시켰다. 12월 한철만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맛이다. 어느 때부터 크리스마스니 핼러윈이니 하루 만에 그치는 것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고작 하루여서 그런가 적어도 일주일은 돼야지. 지나고 나서의 허망함도 싫고, 크리스마스 모양을 입고 30% 세일이 붙는 철 지난 상품들이 딱하기도 해서다.


어렵지만 되도록이면 매일을 특별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순진무구하게 오늘은 다시없을 2021년의 12월 28이야! 하고. 이전에도 없고 내일에도 없을 날이야.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통하지 않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에는 굳이 달력을 확인한다.


2021년의 12월은 처음 살아보는 달. 지난 2021년의 11월은 처음 살아봤던 달. 다가올 2022년의 1월은 처음 살아볼 달. 오늘은 저 달력 속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이 까닭 없이 특별해진다. 때로는 잊기도 하지만,


아직도 캐럴을 듣고 슈톨렌을 먹는다. 나만의 크리스마스는 겨우내 이어진다. 철지난 물건은 없고  모두 지금이 유행이다. 사는 것은 계속 되니까. 원이 아닌 처음과 끝이 다른 직선으로.


끼익 소리내던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어지고 이어져서 어제가 돌아 오늘이 되고. 오늘이 돌아 내일이 되고 앞으로 앞으로. 뻗어나간다. 되돌아갈 수는 없는 타오르고 있지만 연기하나 없는 저 무연탄처럼. 2021.12.31.의 24시간 오늘의 하루도 밝고 아름답게 소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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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acite(무연탄): 불순물이 적어 불에 타도 연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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