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새로운 것들이 떠올랐다. 놓친 것들이나 또는 놓치면 안 되는 것들.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 같던 잃음에 관해서 면역이 생겼다. 아끼던 귀걸이를 잃어버리고도 금세 체념할 때,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리던 날 홀가분함을 느꼈을 때. 잃음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푸념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잃을 것이 많은 나는 이 무뎌짐이 반갑다. 어릴 때부터 잃음이 잦았다. 필통에 있던 연필들은 대부분 새것 같았는데, 몇 번 깎아서 쓰기도 전에 잃어버렸기에 쉽게 다시 사고는 했다.
오랜만에 연필이었다. 적다가 끝이 뭉툭해졌다. 연필을 깎으니 제 살을 잃고 쓰기 좋게 날카로워진다. 쓰여서 뭉툭해지고 다시 깎고 완전해지고. 잃고 얻고를 반복한다. 그중 몇 자루는 주인을 잘나 연필은 몽당연필이 된다.
어릴 때부터 몽당 연필들이 부러웠다. 샤프, 볼펜 더욱 편리한 것들을 두고서도 그렇게 오래도록 쓰였다는 것이, 필통 속을 수십 번 들고 날고 하면서도 제 주인이 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주인의 찾고 챙기는 애정이 있었을 것이었다.
몽당연필은 오래 쓰인 만큼 볼품이 없다. 제 몸에 새겨졌던 그림들도 거의 깎여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면 몽당연필은 긴 연필이 부러웠을까. 깎이는 아픔도 갈리는 아픔도 겪지 않아도 됐으니. 그런 날도 있었겠다. 긴 연필은 늘 같은 자리에서 들고 나는 몽당연필을 바라보았을 것 같다. 어느 날은 긴 제 몸이 마음에 들다가 또 어느 날은 부끄럽다가 그랬겠지.
마음은 늘 양면과 같다.
거칠고 때 묻은 몽당연필처럼 살고 싶다가, 굴곡 없는 긴 연필처럼 살고 싶다가. 그래도 더 많은 날은 몽당연필을 바라본다. 평온한 겉모습보다는 닿아서 쓰이고 싶다. 애정 속에서 잃어버려지지 않고. 쓰이고 쓰여서, 닳고 닳아서. 심이 다 할 때까지. 사각 소리와 함께 짙은 흑심의 자국을 남기고 싶다. 저기 오래도록 사용됐을 몽당연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