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지 않았던, 존재했지만 들어보지는 않은
나의 엄마의 엄마 할머니의 엄마의 이야기.
배부른지 얼마 안 됐다 얘 하며 밥 굶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엔간히도 먹네 좋은 세상이다 좋은 세상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할머니의 동네에는 안자댁이 산다. 내 할머니께 할머니의 이름이 안자냐 물으니 그게 이름이 아니라고, 옛날에는 다 그랬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시집온 곳의 명칭으로 이름을 불렀다고. 나는 잘 모르던 이야기였다.
새비 와 삼천이의 이름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희자 엄마, 영옥이 엄마도 말고 새비도 삼천이도 아닌 날 때 불렸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던 할머니가 떠오른다.
최은영의 책을 보면 자주 운다. 책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 그리고 책을 덮은 잠시 후 때까지, 그녀의 책을 읽는 동안의 나는 덜 외롭고 덜 슬프다. 삼천을 백정의 딸이라 무시하던 어느 부분에서는 주먹을 꽉 쥐고 있던 나를 보았다. 나는 지금 화가 났구나. 책 속에 들어가서 따지고 싶었던 것 같다. 왜 그러냐고, 같은 존재로 태어났는데 당신이 왜 우월하듯 구냐고.
그리고 생각했다. 할머니 말이 맞네, 지금은 좋은 세상이구나.
그때의 그녀들에게는 지금 세상의 모습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아니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밝은 밤 같은 것이었겠다. 나는 과거에 무지했기에 그때는 이렇게 살았는지도 몰랐기에 그것이 나의 밝은 밤이었고, 책을 읽으며 알음알음 알아갔다. 그리고 꺼져있던 어떤 공감의 한쪽이 밝혀졌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나면 그렇다. 이런 것이 있겠구나 하고 마음의 대지가 넓어진다.
신분을 따지던 할머니의 엄마의 세상이 지나고, 전쟁통의 어린애이었던 할머니의 세상이 지나고, 밥 굶던 엄마의 세상이 지나 나의 세상이 왔다. 배는 부르지만 어쩐지 허해서 계속 채워야 할 것만 같은 세상이.
어쩌면 생은 처음부터 강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얇은 한지처럼 얇은 것인데 찢어지고 구겨지다가
거기에 덧대고 덧대면서 질기고 단단해지는 것은 아닐까.
보잘것없지만 대어지고 또 대어지다 보면
좋은 것이 되는 거라고
구겨진 곳을 꾹꾹 눌러 펼치고
하얀 위로를 펼쳐 그 위에 덧바른다.
굶주린 마음은 그런 위로를 허겁지겁 먹는다.
힘들었지만 단단하고 질겨졌겠다고, 다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며 허했던 마음 한켠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