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r Feb 01. 2022

음식에 담긴 것

[음식에 담긴 ]


나이를 먹었나. 마트나 시장에 가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다. 어묵가게에서는 오빠. 반찬 가게의 꽃게무침은 언니. 꽃게를 좋아하면서도 게 알레르기가 있었지. 엄마는 감, 아빠는 오징어. 어느새 언니 이거 좋아하잖아. 이거 오빠 좋아하는데. 이거 다솜이 좋아하니까. 하며 주섬주섬 바구니를 채우는 나를 보았다.


그중에서도 훅 들어와 눈물 글썽이게 하는 곳은 어묵가게다. 광주에 있는 오빠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는데, 두 손 가득 사도 먹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저 ‘좋아하는 건데’하고 생각해 볼 뿐이다. 그럴 때마다 괜히 입안이 까끌까끌한 느낌이 든다.


비슷한 이유로 겁이 많은 나는 감이 무섭다. 엄마는 감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가을마다 앉은자리에서 10개도 넘게 드신다. 그래서 언젠가 엄마 가실 날에 저 감을 보면 엄마 생각날 것이 선하여서. 한동안 저 작은 주황색 과일이 무섭다, 무섭다 하곤 했다. 먼 훗날에 감을 볼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릴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TV를 보시던 엄마가 “와 쑥버무리다” 이야기하신다. 할머니가 겨울마다 만들어줬다던 쑥버무리 이야기다. 쑥버무리를 볼 때마다 엄마는 그때 참 맛있었다고 다시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하나 쑥버무리를 굳이 하지도 사지도 않는 것은 엄마가 먹고 싶은 쑥버무리는 그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가 만든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쑥버무리가 먹고 싶으신 것일 것이다. 음식에는 그리움도 담긴다.


추억이 깃들은 음식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엄마가 겨울마다 만들어주셨던 매생이 떡국, 오빠와 밤마다 먹었던 편의점 치킨, 언니와 자주 사 먹던 코코넛 쿠키와 베이비 슈, 고등학교 시절에 자주 먹던 피자스쿨. 함께 먹었던 사람이 있었고 그때를 떠올리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따듯한 음식이 아니었는데도 마음 한편이 따듯해진다. 음식에는 사랑도 담긴다.


그리움이 담긴 음식, 사랑이 담긴 음식.

오늘 먹은 것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오늘 당신이 먹은 음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오늘 당신이 먹은 음식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가끔씩 음식과 함께 소화되지 않을 마음을 삼키곤 했다. 시간이 지나도 혀끝에 맴도는 그 맛과 그때의 얼굴들이 사랑이 됐다가 그리움 됐다가 한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 모든 툴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