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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 Mar 09. 2022

전봇대,조화,고양이

아는 이가 중국에 갔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깨끗해서 보니 전봇대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  개발이 시작된 지역이라 전선을 땅속에  묻었다고 했다.


하수구 옆에 조화가 하나 떨어져 있었다. 걸어가다 보니 한 할머니가 다른 꽃을 주웠는지 집 앞 전봇대 사이에 꽃을 꽂아두고 있다. 빠지지 않게 눌러 넣고 꽃잎이 잘 보이도록 펼쳐놓았다.


덕지덕지 세월을 견딘 전봇대의 몸에 노란 꽃이 피었다. 이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흉물스럽다고 땅에 묻으려고 하는 사람과 그 전봇대 사이에 꽃을 꽂는 사람. 나는 누구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볼일을 보고 전봇대를 다시 보고 싶어 왔던 길로 걸었다. 신기하게도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전봇대 옆에 앉아 끔뻑끔뻑 앉아서 졸고 있었다. 나비야 너도 꽃을 본 것이니. 고양이도 사랑받는 자리를 안다.


그 모습이 예뻐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하수구 옆에 꽃을 버리는 이와 그 꽃을 주워 꽂는 이. 하수구 위에 버려진 조화를 보았을 때도 참 짠하다 하고 건져줄 생각 않고 사진으로 훔쳐 달아났으니. 아무래도 나는 꽃을 버리는 쪽이 아닌가. 쉽게 들이고 쉽게 버리고. 너무 많이 가져서 하나 정도는 사라져도 모를 것 같은 내 공간. 젊은 나여도 마음이 소녀인 것은 할머니였다.


맑은 하늘을 가리는 얽히고설킨 전봇대 . 묻어버리면 깨끗하게 하늘을 보겠지만  기둥과 선들은 어찌해야 하나. 저것이  버려지고 땅에 묻힌다니 끔찍하다. 불편해도 두어야지. 다만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할까. 그런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낡은 전봇대, 버려진 조화, 떠돌이 고양이. 아름답다 붙이기에는 거친 것들에 할머니의 시선 하나가 닿아 아름다워진 것처럼. 분명히 들었다 지나가던 이도 ‘저기 고양이  하는 것을.  장면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혼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모두 낡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낡음이 어떻게 아름다워질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거창할  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오늘 본바, 케케묵음이 아름다워지기 위한 요소는 따듯한 시선과 약간의 애정. 그리고 지나가던 고양이의 우연.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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