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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랭크 Mar 07. 2023

덕업일치의 기쁨과 슬픔, 전축 안성호 & 이교빈 대표

전축 안성호 & 이교빈 대표 X the blank_

|  INTERVIEW

                                           

                                                                           전축 안성호 & 이교빈 대표  X the blank_ 편집팀


Q. 공간의 컨셉이나 요소들의 조합이 독특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게 되셨나요?

안성호
저희 집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것 아닐까요.(웃음) 우드톤의 가구, 오디오, 음반들, 술장 같은 것들은 집에 거의 그대로 되어 있는데 단지 스케일이 커지고 좀 더 상업 공간에 맞게 정갈하게 꾸민 거라고 보시면 돼요. 


원래 제가 음악 듣고 요리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친구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같이 음악 들으면서 맛있는 거 먹고, 술 마시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어요. 한 번은 그 자리에 교빈이가 왔었고, 이후에 하우스 메이트가 됐거든요. 그런데 교빈이도 이전에 에어비엔비 같은 걸 호스트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둘이서 이 장점을 살려서 친구들을 초대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게 됐고요.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그 때 이렇게 좋은 걸 우리끼리 집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멋진 공간을 꾸려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보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발전하게 됐네요.


이교빈
저희 둘은 이런 걸 워낙 좋아하고 또 맛있는 음식에 좋은 술 잘 차려서, 음악 들으면서 먹는 걸 워낙 좋아하고, 자주 하니까 저희 딴에는 그냥 ‘집들이 파티’ 같은 거였는데, 친구들이 오면 감탄을 하더라고요. 집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거냐고. 반응이 너무 좋아서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에 집밥 계정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사실 집밥이라고 하면 가장 큰 칭찬이 ‘밖에서 사 먹는 음식 같다’라는 것이잖아요. (웃음) 항상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이거는 팔아야 된다.’, 그래서 ‘그럼 정말 한 번 팔아볼까?’ 해서, 건축하는 친구를 영입을 해서 셋이서 전축을 만들게 됐어요.

Q. 건축가, 디자이너, 마케터 세 사람이 합심해 요리와 음악, 브랜딩, 공간 설계를 나누어 맡아 전축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봤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공들인 공간인만큼 많은 준비를 하셨을 거 같아요. 공간의 제작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안성호
원래 이 건물을 계약했을 땐 일반적인 마감이 되어있는 평범한 상가 건물이었어요.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심하면서 건축하는 친구가 철거 업체를 부르는 거나 우리가 하는 거나 똑같다고 그래서 처음으로 셋이 같이 철거를 해봤어요. 손도끼 같은 걸 들고 필요 없는 걸 다 부수는데 건축하는 친구가 천장을 한번 부숴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부쉈더니 너무 멋있는 지붕 슬레이트와 서까래가 드러났어요. 60년 넘은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거더라고요. 이 서까래를 발견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축가 친구가 이걸 반드시 살려서 이 공간의 매력으로 삼아보자 해서 깨끗하게 청소하고 코팅을 했죠. 덕분에 장점이 많아요. 일단 층고가 높으니까 손님들도 보시기에 시원하고, 또 저희는 음악이 무척 중요한데 소리는 층고가 높으면 울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듣기도 좋고요. 콘서트홀 같은 음향 구조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죠. 
 

이교빈
이 천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흡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었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결이 됐어요.

Q. 공간에서 레트로 분위기도 물씬 풍겨요. 따로 기획을 하신 건가요?

이교빈

사실 레트로보다는 클래식에 가깝기를 바랐어요. 


안성호
‘이 공간의 콘셉트는 레트로야’ 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한테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자연스럽게 색감이나 구성 같은 것들이 복고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편하고 익숙하니까. 그런데 그것이 낡아 보이거나 너무 뻔해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스파클링을 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교빈
일단 요즘엔 ‘전축’이라는 단어 자체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클래식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모르더라도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느끼는 클래식한 무드를 만들어내면 아무것도 모르는 분들이 와도 이거를 충분히 다 느끼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안성호
맞아요. 그리고 동국대학교도 가까이 있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상대적으로 연령층이 젊은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생각보다 7~90년대 문화를 굉장히 잘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윤상 같은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오히려 그분들이 저희보다 더 역사적인 것, 지나간 문화예술에 대해 잘 알고,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걸 보면 거부감 없이 수용력이 넓은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여기 있는 것들을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접점은 분명히 있고, 그 접점에서부터 출발해서 즐기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Q. '전축'이라는 이름을 짓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어떤 의미로 네이밍하신 건가요?
안성호

앞에서 말씀드린 기획에서 출발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포인트가 뭘까 생각해봤어요. 집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보내는 시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좋은 음악’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좋은 소리로 듣는 좋은 음악. 거기에 얹어서 좋은 술, 좋은 요리 그리고 그것들을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자리 같은 핵심 가치만 두고 네이밍을 고민을 했었죠. 


이교빈

그래서 그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었는데,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한글로 된 두 글자’ 로 생각해보자고 귀결이 됐어요.
 

안성호

한편으론 정겹고, 사람들의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하다가 옛날 할아버지 댁에 가면 거실에 있던 전축이 떠올랐어요. 예전에는 오디오라는 말을 안 썼잖아요. 다들 전축이라고 불렀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전축에 가까운 오디오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오디오’라고 하면면 되게 어렵고 고상한 취미같지만, ‘전축’이라면 되게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름에서 풍기는 복고적인 느낌도 좋았고, 또 한글이니까 기억하기도 쉽고요. 저희가 표현하고자 하는 공간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렇다면 이 공간 ‘전축’의 주인공, 메인스테이지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전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기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매력포인트가 있을까요? 

안성호
전축을 만들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스피커를 구입하는 거였어요.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모델이었거든요. 먼저 장비 소개를 드리자면, 저 스피커는 1986년도에 영국에서 제작한 탄노이 GRF메모리스피커라고 해요. 그 당시에는 꿈의 하이파이 스피커 모델이었다고 하는 제품이고요. 굉장히 엔틱한 외관과 멋진 우드 크래프트 바디 자체가 시각적인 만족감을 줘요. 그리고 앞에 보면 불필요한 진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코르크로 마감이 되어 있거든요.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인데다가 저희가 와인을 파는데, 와인의 코르크와도 연관이 되니까 재밌는 부분 같아요. 소리도 아주 푸근하면서도 웅장한 소리가 나요. 그래서 요즘에 나오는 명료하고 화려하고, 정교한 소리가 나는 하이파이 모델들에 비해 뭐랄까 둥글고, 부드럽다는 느낌이 들죠. 바이닐 음악이랑 잘 맞는 스피커라고 생각해요. 또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전축은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와인이나 전통주를 즐기는 공간인데 오래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고 편안해요. 그래서 저 스피커를 선택하게 됐어요.

Q. 정말 음악과 오디오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 느껴지는 답변이에요. 전축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이 앰프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많이 느끼실 것 같은데요. 양 옆에 있는 앰프도 소개해주세요!

안성호

이 앰프는 1974년도 미국에서 만든 매킨토시 앰프라고 해요. 매킨토시 앰프는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는 아주 고급 오디오 브랜드인데, 그중에서도 이제 옛날에 제작되어서 굉장히 빈티지한 소리를 가지고 있는 모델이에요. 그래서 스피커와 합이 잘 맞고 또 보기에도 그윽한 맛이 있어서 공간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소리가 힘이 있으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약간 선이 굵은 붓글씨 같다고 할까요?


이교빈
저는 이 친구처럼 많이 알고 있지는 않았었는데, 전축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게 보통은 스피커만 좋은 걸 사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앰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고요. 전력을 받아서 힘을 쏴주기 때문에 스피커와 앰프 두 개의 조합도에 따라서 같은 노래도 엄청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안성호
스피커는 어떻게 보면 바퀴의 타이어, 앰프는 엔진 같은 거거든요. 타이어와 엔진이 잘 매칭이 되어야 자동차가 잘 달리는 것처럼 오디오도 그런 조화가 중요해요. 요새는 스피커와 앰프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는 저렇게 분리해서 만들었어요. 턴 테이블에서 소리 신호가 나오면 그 소리 신호가 프리 앰프를 거치고, 파워 램프를 통해 스피커로 밀어내는 굉장히 옛스러운 시스템이죠. 


Q. 갑자기 이 스피커의 가격이 궁금해졌어요. 혹시 여쭤봐도 되나요?

안성호
이 스피커는 옛날 모델이다보니 요즘 제품 가격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단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제품의 후속으로 출시된 모델은 현재 대략 새 제품 4500만 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 시절 모델을 중고로 구매했기 때문에 600~700만 원 정도 선에서 구매했고요. 
 

이교빈
그런데 중고는 찾기가 힘들어요. 국내에는 일단 물건이 많이 없고, 이것도 광주광역시까지 가서 가져온 제품이거든요. 근데 재밌는 건 오디오를 전문으로 중고 거래하시는 분들은 아무한테나 팔지 않더라고요 특히 이렇게 애정이 가 있는 스피커는 ‘어디에서 쓸 거냐, 왜 쓰는 거냐’ 이런 걸 구체적으로 물어보세요. 리세일이 목적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판매 자체를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시장이 되게 좁기 때문에 서로 다 알아요. 저희도 거의 면접을 보고 나서 구매할 수 있었어요.  
 

안성호
맞아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이게 문화유산이잖아요. 더 이상 저런 스피커는 만들 수가 없거든요. 아까 제가 저 후속기기가 판매되고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저런 건 정감이 달라요. 요즘은 훨씬 모던하고 심플하게 나오기 때문에 보는 맛, 만지는 맛도 덜하고, 둥글고 정다운 음색을 구현하기 어렵죠. 그러니까 이 스피커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내가 비록 다른 사람에게 판매한다 하더라도 아무한테나 주기 싫고, 진가를 아는 사람한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저희는 구매함으로써 그걸 잘 승계를 해야한다는 의무를 갖게 되는 거고요.

Q. 설명을 듣고나니 다시 한번 집중해서 음악을 듣게 되네요. 계속 음악 얘기를 해보자면, 되도록이면 LP레코드로 음악을 틀어주신다고 들었어요. 스피커나 바이닐 관리나 구매 등 디지털 스트리밍에 비하면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들텐데도 LP를 고집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표님이 느끼시는 LP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안성호

저한테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히 귀로 듣고 마는 자극이 아니라 음반을 고르고, 그걸 물리적으로 잡아서 턴 테이블을 걸고, 또 앰프를 조작하는 전체 과정을 즐기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죠. 특히 젊은 사람들은 넓고 여유있는 집에서 살기 어려우니 저것들을 집에다 갖다놓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이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고, 저걸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는 베스트는 바이닐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도 바이닐 음악을 좋아하고, 전축에서도 가급적 바이닐 음악을 많이 틀어드리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Q. LP 플레이와 관련해서 인상깊은 문구를 인스타그램에 적어두신 걸 봤어요. 같은 맥락이겠죠?

안성호
맞아요. 요새는 스트리밍도 그렇고 CD 같은 것만 해도 디지털 신호잖아요. 아날로그 LP는 음악에 따른 골이 있어서, 턴 테이블에 바닥을 긁으면서 나는 소리를 그대로 증폭시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아날로그인 거죠. 그렇게 아날로그 기록을 읽게 되면 어떨 땐 오차도 있을 수가 있고 약간의 왜곡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은 약간 왜곡이 있어야 편안하게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사진도 정확하고 또렷한 색감의 디지털 사진보다는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바이닐 음악의 매력이 듣는 과정에서의 손맛도 있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큰 것 같아요. 복잡한 디지털 신호를 변환해서 정교하게 재생하는 것보다도 부정확한 오류마저 있는 그대로 즐긴다는 것이요. 소리의 원천을 진동을 통해 그대로 증폭해서 들려준다는 점에서 음악과 듣는 사람의 마음이 일직선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Q. 소리의 원천과 듣는 사람이 맞닿아 있다고 표현하신 점이 인상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스피커로, 그리고 LP로 음악을 트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관리도 힘들 것 같고요.

이교빈
LP는 스트리밍처럼 장시간 재생이 안 되니까 요리하다 말고도 음악이 끝나면 와서 교체하고 그래요. (웃음) 가게가 날씨나 찾아오신 손님분들의 스타일에 따라 분위기가 휙휙 바뀌는데, 그 분위기에 따라서 LP를 고르고 있어요.
 

안성호
연인들이 유독 많은 날엔 끈적하게 재즈로 많이 올리고, 젊은 분들이 많아 흥이 넘치는 날엔 휘트니 휴스턴부터 시작하고, 늦은 밤 11시쯤 됐는데 바깥에 촉촉하게 비가 내리면 이소라 앨범을 틀고요.
 

그리고 저 앰프가 지금 50살이거든요. 가끔 출근하면서 ‘오늘도 제발 살아만 계셔주세요.’ 그래요. 조금씩 고장나 있는 부분들은 제가 직접 납땜해가면서 고치고요. 옛날 물건이기 때문에 구조가 되게 간단하거든요. 제가 고치고 청소도 많이 하고, 정 어려운 거는 세운상가로 달려가서 고쳐가면서 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 장인들이 정말 많아요.


Q. 혹시 신청곡 같은 것도 받으시나요.
안성호
저희가 가지고 있는 음반 중에서는 받는데요. 사실 신청곡을 틀어드리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아요. 신청곡은 자기가 이미 아는 노래를 듣는 거잖아요. 저희는 손님들이 전축에 오셔서 처음 들어보지만 좋은 곡들을 많이 발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죠.
 
Q. 전축의 LP 음반 구성은 어떤가요?

안성호
일단 이 LP 장을 기준으로 보자면 왼쪽부터 클래식이 한 3칸 정도 있고요. 그 다음 3칸은 재즈, 마지막 2칸이 팝과 영화 음악들이에요. LP는 계속 사들이는 중입니다. 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들과도 계속 로테이션 시키고요. 원래 저는 클래식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음악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클래식을 듣다 보면 결국 재즈를 들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과정이 이 가게를 준비하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게 갔던 것 같아요.

Q. 재즈의 어떤 면이 좋으셨나요?

안성호
클래식이라는 고전 음악이 있고, 팝/록/힙합/r&b 같은 현대의 음악들이 있는데, 그 사이를 딱 연결해주는 음악이 재즈예요. 클래식의 형식을 가지고 와서, 흑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풀어낸 것이 재즈거든요. 재즈는 언제 들어도 편한 것 같아요. 사실 재즈는 어려운 음악인데 말이에요. 마치 야구처럼요. 야구 경기를 보면 룰이 복잡하잖아요. 물론 룰을 알고 봐도 재밌지만, 잘 모르고 야구장에 가서 치킨 먹으면서 그냥 봐도 재밌잖아요. 손님들도 그렇게 좀 편안하게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재즈를 틀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Q. 얼마 전, 전축의 정기 예술 세션인 전축전 2회가 개최했다는 게시물을 봤어요. 음악, 영화, 미술, 건축, 미식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예술을 이야기하는 정기 예술 세션을 기획하신 이유와 과정, 그리고 전축전에서 나눈 이야기가 궁금해요.

안성호
처음 저희가 이 공간을 만들 때, 집에서 친구들과 대화하고 즐기던 것들을 여기다 확장시킨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최근에 본 영화, 감명깊게 읽었던 책, 혹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시사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요. 그 이야기들이 저희 삶에 많은 영감과 활력을 줬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그 공간을 ‘전축’으로 상업화했고, 거기서 나눴던 대화를 여러분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기획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정기적인 행사로, 전축만의 시그니처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제한 없이 다양한 아젠다를 갖고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이교빈
단순히 술과 음식을 파는 주점보다는 좀 더 ‘살롱’ 같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영업을 쉬는 낮시간에도 여기는 참 예쁜데, 이 시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이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한거죠. 


Q. 1회도 2회도 모두 영화였는데요!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분위기가 궁금해요.

안성호

전축전 2회에서는 작년 한 해 예술 영화로는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던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다뤘는데요. 그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해주셔서 신청자분들을 다 모시지 못했어요. 영화 자체를 좋아해서 오신 분들도 많았지만, 그 때 연사가 영화 수입 마케터였거든요. 그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이 왔어요. 그래서 Q&A가 무척 활발했고요. 그게 저희가 바라는 소통이고 교류거든요. 누군가에게는 도움도 되고, 그저 편하고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이교빈
전축전 첫 회를 영화로 시작을 한 것도 가게가 위치한 자리 ‘충무로’ 때문이었어요. 충무로는 한국 영화의 메카잖아요. 그래서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배급이나 수입, 제작 같은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같이 해보면 더 풍성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업계 종사자분들을 연사로 모시게 됐어요. 

Q.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꿔볼게요. 전축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안주들이 유명하다고요! 안주는 교빈네 주방장님이 직접 모든 레시피를 개발하시고 만드시나요? 더불어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안주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안성호
일단 저는 술을 참 좋아하는데, 안주 부실한 걸 못참아요. 핫한 와인바가 많지만 안주가 비싸기만 하고, 양도 적고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안 좋았던 기억들이 있거든요. 저희는 안 그러고 싶었어요. 그래서 푸짐하게 양 많고, 맛있고, 어렵지 않게 친숙한 레시피들로 메뉴를 구성을 했습니다.
 
Q. 언뜻 친숙하고 평범한 메뉴들이지만, 살펴보면 킥이 하나씩 있는 것 같아요.

이교빈
킥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요. 다른 데서도 먹을 수 있는 흔한 메뉴지만 맛에 있어서는 어딘가 여기만의 독특하고 인상적인 면이 있어야 되거든요.


Q.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발하시나요?

안성호
일단은 저희가 많이 먹으러 다니고요. 술과 궁합도 많이 보려고 해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요.


이교빈
먹으면서 분석을 엄청 많이 해요. 그리고 특별하거나 너무 아방가르드 한 것은 지양하려고 하죠.
 

안성호 
저희는 셰프 출신이 아니잖아요. 파인다이닝 같은 곳에 가보면 간혹 셰프의 맛있음과 일반인의 맛있음이 조금 다를 때가 있어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고평가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반면에 일반인들은 그게 하이엔드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 입맛에 맞고 친숙한 것들이 따로 있거든요. 제가 셰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욕심을 좀 덜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렵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친숙하고 푸짐하면서 술과 잘 어울리고, 손님들이 편안하게 드실 수 있는 메뉴를 위주로 선보이고요. 

Q. 셰프가 아니셔서 좀 부담스럽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그냥 편하고 간단한 안주들로 할 수도 있을 텐데 본격적인 요리를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안성호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재미있어요. 요리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사실 메뉴는 많이 간단해진 편이에요. 처음에는 더 푸짐하고 복잡한 메뉴들이 많았는데, 요리를 하는 저도 힘들고 맛을 균일하게 내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아서 협의점을 찾았죠. 최대한 균일하게 품질 관리를 할 수 있는 것이 프로의 영역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수련을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이고, 계량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Q. 전축만의 시그니처 메뉴 소개 하나 해주세요.

이교빈
역시 전축 떡볶이죠! 메뉴판 보시면 제일 첫 번째에 있어요. 처음에 메뉴 개발할 때 제일 시간 많이 쏟은 게 떡볶이거든요. 떡볶이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가게만의 떡볶이를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볼까 고민이었죠. 굉장히 많은 종류의 떡볶이들을 먹어봤고, 떡볶이가 아닌 것들도 먹어보면서 이걸 떡볶이로 만들면 어떨까도 연구를 정말 많이 했어요.
 

안성호
사실 엄청 힘들었어요. 보통 우리가 아는 익숙한 고추장 떡볶이는 맛있기는 한데,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는 와인의 텁텁한 맛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약간 미스매치되거든요. 그래서 떡볶이가 갖고 있는 유치하면서 자극적인 맛있음, 떡의 쫄깃한 질감 같은 걸 살리면서 와인과도 잘 어우러지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였어요. 결국 아주 진한 육수와 채수의 블렌딩에서 답을 찾았죠. 전축 떡볶이는 되게 하얗고 부드러운데, 깊고 칼칼한 맛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서 취급하는 깊고 바디감이 강한 와인과도 매칭이 좋고 전통주와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Q. 전통주 얘기를 조금 해주실 수 있나요? 와인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주류 라인업이 있음에도 전통주를 같이 판매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안성호
전통주를 판매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서울에서 술을 파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술을 많이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전통주가 점점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희는 흔히 막걸리라고 하는 탁주를 취급하지 않고, 청주 약주 증류주 이렇게 맑은 술를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요. 


Q. 탁주를 취급하지 않는 이유는요?

안성호

일단 탁주는 저희보다 잘하는 곳이 굉장히 많아요. 자체적으로 양조에서 만드는 곳들도 있고요. 그런 곳들이 비교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는 안 하는 측면이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전통주 하면 막걸리만 떠오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 분들이 그동안 몰랐지만 굉장히 맛있고 좋은 술을 발견하는 기쁨을 경험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청주, 약주, 증류주를 중점적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Q. 메뉴에 라인업된 주류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신 건지 궁금해요! 안주와의 조합인가요? 아님 대표님의 취향에 따라 라인업 된 것일까요?

안성호

일단은 품질이 좋아야 되고요. 가격도 합리적이어야 되고, 또 가장 중요한 건데 테이블에 올렸을 때 멋있어야 돼요. 저희가 여러 전통주들을 셀렉하다 보면 맛도 좋고 다 좋은데 라벨이나 상품 외형이 촌스러운게 많아요. 앞에서 LP 음악을 들을 때 음반을 만지고, 걸고, 조작하는 즐거움이 중요하다는 것처럼 술도 그렇거든요. 어떤 잔에 따라서 마시는지, 어떤 라벨과 병 모양인지 같은 것들이 모두 술을 즐기는 데에 중요한 요소인데 전통주는 유독 이 부분에서 약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 많이 발전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중에서 눈에 띌 만한 성취를 이룬 상품들을 저희가 적극 발굴해서 소개해드리고 있죠. 
 

Q. 추천해주실 만한 주종이 있을까요?

이교빈

김포 예주입니다. 이름은 굉장히 옛스러운데 드셔보시면 굉장히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전통주라고 하면 쌀 향 날 것 같고 구수할 것 같잖아요. 물론 기본적으로 깊은 바디감이나 단단함도 있지만 한편으론 샤도네이(화이트와인) 같이 상큼하고 산뜻한 맛이 같이 나요. 보기에도 멋있고요.
 

안성호
가성비도 굉장히 좋고요 맛있어요. 85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김포 양조장에서 신세대의 취향에 맞춘 술을 만들어보자 해서 나온 것이 김포 예주 프리미엄이거든요. 레이블도 굉장히 멋스러우면서 가성비와 맛이 좋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전통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술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굉장히 자신 있게 추천드리는데 다들 좋아하시고 반응도 좋네요. 참고로 저희 가게에서 네 발로 기어나가시는 분들이 많이 드세요. 도수는 높지 않은데 워낙 감칠맛이 강하고 요리와 페어링이 좋아서 술술 들어가거든요. 가끔 그렇게 제대로 즐기시는 분들을 보면 뿌듯하죠. 계단에서 많이 굴러 떨어지시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웃음)

Q. 가게 벽면에 걸려있는 사진이 대표님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요! 공간 사진도 즐겨찍으시는지 궁금해요.

안성호

네,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서울의 모습을 담고싶었어요. 예전에 영등포 쪽에 살았거든요. 집 앞 한강 산책을 자주 나갔었는데, 그때 찍었던 사진들이에요. 제가 필름 사진을 되게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필름 사진을 찍어왔거든요. 


이교빈

이 사진이 언뜻 보면 7080년대, 되게 오래된 사진 같은데 자세히 보시면 저기 지은지 얼마 안 된 OO아파트도 있거든요.(웃음)
 

안성호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클래식인 것 같아요. 오래된 것, 옛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쭉 이어지는 어떤 흐름 인거죠. 과거의 서울 같기도 하고, 지금의 서울이고, 앞으로도 저런 서울의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공간을 꾸밀 때 쉬운 길을 가려면 외국 것들, 이국적인 분위기를 많이 갖고 오잖아요. 저희는 가급적 한국적인 것들 것 많이 활용해보자는 다짐을 했어요. 한국의 정취, 한국의 문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지금의 전축이 탄생했네요.


Q. 전축 운영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하나씩만 뽑아본다면 어떤 순간이 떠오르시나요?

이교빈
 가장 기뻤던 건 가게 오픈하고 바로 다음 주쯤 처음 만석이 된 날이에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카모메 식당’인데,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타지에 식당을 차려요. 사람들이 가득 차 있고, 요리를 하다가 그 모습을 잠깐 보고 한번 씩 웃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저도 딱 주방에서 처음 만석이 된 전축의 모습을 보니까 그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이 다시 저한테 전해져 오더라고요.
 

안성호
저는 보통 2시 정도에 출근을 하거든요. 아무도 없는 가게에 저 혼자 제일 좋아하는 골든 스팟에 앉아서 음악을 듣는데 그 때가 참 좋아요. ‘내가 참 좋은 공간을 만들어놨구나’ 싶고, 나한테 좋으니까 다른 분들한테 자신 있게 권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죠. 반면 아주 약간 슬픈 건 있어요. 취미가 돈벌이가 되니 음반을 살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손님들이 좋아할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거든요.

Q. 그렇다면 힘든 순간을 꼽아보자면요?
이교빈
천장을 셀프로 철거할 때요. (웃음) 도끼를 들고 사다리에 올라가서 천장을 직접 뜯는데 ‘내가 이러려고?...’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예상했던 모습은 우아하게 와인을 팔고, 음식을 추천하는 거였는데, 이런 걸 하고있다니 싶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 때 기억이 굉장히 많이 남네요.
 

안성호
저는 다른 바(bar)나 식당에 갈 때 좀 슬퍼요. 전축을 운영하기 전에는 순수한 손님으로서 가서 마음껏 편하게 즐길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딜 가도 계속 분석하게 되고 일하는 자세로 보게 되더라고요. 내 눈에 보이는 것 말고 이면에 가려진 것들이 보이고, 계속 체크하거나 비교하고 분석하게 되니까 순수하게 즐길 수가 없는거죠.
 

Q. 덕업일치의 숙명 같은 거죠.(웃음) 그럼 앞으로 전축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교빈
제가 가진 운영 철학이기도 한데요. ‘천골이 아프지 않은 공간’이 되길 바라요. 천골은 허리 아랫쪽 척추인데요. 왠지 모르게 긴장되고, 힘이 들어가는 공간들이 있잖아요. 그럼 천골이 아프더라고요. 전축에서만큼은 편안하게 널브러져서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몰린다고 해서 이용 시간 제한을 걸고, 어플로 사전 예약을 받고, 이런 식으로 하기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나,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음식이든, 술이든, 음악이든 늘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이 있고요. 


안성호
마찬가지로 저도 전축에서는 늘 익숙함 속에 새로운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단골이 되어도, 전축이 익숙한 공간이 되어도 그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공간이요. 전축전에도 더 다양한 분들을 모시고 싶고요.

Q. 전축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교빈 
혹여나 이 인터뷰를 읽고 전축에 찾아 오신다면, 평일 느즈막히 오시는 걸 추천해요. 이런 것들 더 잘 느끼고, 누리시기엔 주말에는 조금 복잡해서요. 


안성호
제가 인스타그램에 늘 ‘누려주세요.’라고 쓰고 있습니다. 누린다는 말은, 단순히 즐기거나 사용한다는 걸 넘어서 진짜 내 것처럼 편안한 자세와 마음으로 좋은 것부터 나쁜 것까지 다 경험하고 즐긴다는 뜻인 것 같아요. 전축을, 전축의 음악과 술, 공간과 요리를 누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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