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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an 04. 2025

163> 靑樓曲(청루곡) - 2

漢詩工夫(241006)

靑樓曲(청루곡) - 2

 - 王昌齡(왕창령)


馳道楊花滿御溝

치도양화만어구

○●○○●●◎

대군이 가는 길의 버들 꽃 도랑에 가득하고


紅粧漫綰上青樓

홍장만관상청루

○○●●●○◎

꽃단장한 기녀들이 청루에 올라서 보네.


金章紫綬千余騎

금장자수천여기

○○●●○○●

금 인장과 자주색 인수 천 여기라


夫婿朝回初拜侯

부서조회초배후

○●○○○●◎

낭군이 조정에 돌아와 첫 작위를 받는다.

* 馳道(치도):왕족(王族)이나 양반들이 다니던 큰길.

* 禦溝(어구):대궐(大闕)로부터 흘러나오는 개천

* 紅妝漫綰(홍장만관):붉고 성대하게 화장과 치장한 여인의 모습.

* 金章紫綬(금장자수):고대에 승상이 차던 자색 인수(印綬)와 금색 인장(金印)으로 고관대작을 상징한다.

* 拜侯(배후):侯爵(후작)에 봉하다.

此(차)는 言馳道(언치도)에 植以楊柳(시이양류)하야. 楊花(양화)가 隨風而飛飛(수풍이비비)하야. 滿積御溝(만적어구)하니, 此乃晩春之景也(차내만춘지경야)라. 於是(어시)에 少婦(소부)가 謾綰紅粧(만관홍장)하고, 上靑樓上而望之則金章紫綬之千餘騎(상청루상이망지즉금장자수지천여기)에 夫壻(부서)가 以攻戰之功(이공전지공)으로 今始拜侯(금시배후)하니, 豈不感喜也(기불감희야)리오. 瞻彼春日凝粧之少婦則忽見楊柳色而悔敎覓封侯(담피춘일응장지소부즉홀견양류색이회교멱봉후)하니, 彼小婦(피소부)는 感物傷心者也(감물상심자야)오. 此少婦(차소부)는 拜侯得意者也(배후득의자야)니. 何其憂喜之懸殊也(하기우희지현수야)오.

이 시는 치도에 버드나무를 심어 버들 꽃이 바람 따라 펄펄 날려 도랑에 쌓이니, 이는 곧 늦봄의 풍경을 말한 것이다. 이에 젊은 아낙이 성대하게 분장하고 청루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금장자수의 천여기에 낭군이 전공을 세운 것으로 이제 처음 후에 봉해지니 어찌 감회가 기쁘지 않겠는가? 저 봄날에 성장한 젊은 아낙을 보니, 즉 홀연히 버들 색을 보고는 봉후를 찾도록 한 것을 후회하니 저 젊은 아낙네는 사물에 감응하여 상심하는 자이고, 이 젊은 아낙은 후작에 임명되어 뜻을 얻은 자이니, 어찌 그들의 근심과 기쁨이 그리도 다른가?

* 王昌齡(왕창령) :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이다.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해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가, 개원 22년(734)에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합격해 사수위[(汜水尉, 사수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싱양시(滎陽市) 서북쪽]에 제수되었다. 개원 25년(737)에 죄를 얻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다가 사면되어, 개원 28년(740)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강녕승[江寧丞, 강녕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으로 임명되었다. 천보(天寶) 6년(747)에 다시 죄를 얻어 용표위[龍標尉, 용표는 지금의 후난성(湖南省) 화이화 지구(懷化地區)]로 좌천되었다. 천보 14년(755)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에 머물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주자사(濠州刺史)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되었다. 왕지환(王之渙), 고적(高適), 잠삼(岑參),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과 교유했으며,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시로 명성이 높았다. ‘변새(邊塞)’, ‘궁원(宮怨)’, ‘규원(閨怨)’, ‘송별(送別)’을 노래한 작품들의 성취가 매우 높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후인들에게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린다. 저서로 ≪왕창령집(王昌齡集)≫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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