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西宮(서궁) : 한나라 成帝(성제)의 사랑을 잃은 班婕妤(반첩여)를 趙飛燕(조비연) 자매는 성제의 마음이 혹시라도 반첩여 에게 되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반첩여가 황제를 중상 모략했다고 무고하여 그녀를 옥에 가두게 만든다. 그러나 진상을 조사한 결과 반첩여의 혐의는 풀렸지만 반첩여는 그들의 또 다른 모함을 피해 태후를 모신다는 핑계로 옮긴 태후의 궁전인 長信宮(장신궁)을 서궁이라 한다. 오래도록 믿음을 받는다는 장신(長信)이란 이름의 궁궐이었으나 그녀의 바람과 달리 가을 부채처럼 왕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반첩여는 스스로를 秋扇(추선)이라 불렀다.
* 芙蓉(부용) : 흰색이나 담홍색 꽃이 피는 연꽃을 가리킨다.
* 水殿(수전) : 물가에 세운 전각을 뜻한다. 왕이 타는 유람선의 전각을 말하기도 한다.
* 珠翠(주취) : ‘구슬 주, 물총새 최’ 자로 ‘진주와 비취’를 뜻하며, 여기서는 ‘구슬과 비취로 머리를 장식한 여인을 비유한다.
* 秋扇(추선) : 가을 부채의 뜻으로 때가 지나서 소용없게 된 물건 또는 늙어서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인을 의미한다.
* 空懸(공현) :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말하고, 또는 공연히 부질없이 떠있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첫머리에 궁녀의 자연스러운 꽃 같은 모습을 말했고, 또 예쁘고 화려하게 분장을 더하여 부용보다 나으니, 황제가 행차하여 오심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먼저 미색을 말하고 다음에 향기를 말하였으니, 진주와 비취가 향기롭다면 바로 윗구의 장(粧) 자를 이은 것이니, 바람이 불어와 진주비취의 향을 날리면 부용이 바람에 절 하리니. 예쁘고 화려함이 아와 같아 마땅히 군왕이 행차하지 않겠는가?
미인의 바람이 비록 깊으나, 오히려 정을 품은 한을 토로하기 어렵고, 공연히 때 지난가을 부채를 마주하니, 버려져 쓸 수 없는 것이었으나, 다만 가려지고 틈이 생겨 절로 은혜를 상하고 정이 중간에 끊어지니 원망이 심한 것이다. 밝은 달이 한창 좋은 가을을 당하였으나, 다만 황제께서 오지 않으니. 또한 이같이 공연히 매달려 본다. 그러나 오히려 기다리는 자가 있어서 마음은 황제에게 정을 잊을 수 없으니, 감히 절망할 수 없는 것이다.
* 王昌齡(왕창령) : 당(唐)나라 경조(京兆)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사람이다. 자(字)가 소백(少伯)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15년(727)에 진사(進士)에 급제해 비서성교서랑(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가, 개원 22년(734)에 박학굉사과(博學宏辭科)에 합격해 사수위[(汜水尉, 사수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싱양시(滎陽市) 서북쪽]에 제수되었다. 개원 25년(737)에 죄를 얻어 영남(嶺南)으로 폄적되었다가 사면되어, 개원 28년(740)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강녕승[江寧丞, 강녕은 지금의 장쑤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으로 임명되었다. 천보(天寶) 6년(747)에 다시 죄를 얻어 용표위[龍標尉, 용표는 지금의 후난성(湖南省) 화이화 지구(懷化地區)]로 좌천되었다. 천보 14년(755)에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일대에 머물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주자사(濠州刺史) 여구효(閭丘曉)에게 피살되었다. 왕지환(王之渙), 고적(高適), 잠삼(岑參),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과 교유했으며, 개원(開元)·천보(天寶) 연간에 시로 명성이 높았다. ‘변새(邊塞)’, ‘궁원(宮怨)’, ‘규원(閨怨)’, ‘송별(送別)’을 노래한 작품들의 성취가 매우 높으며, 특히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나 후인들에게 ‘칠절성수(七絶聖手)’라고 불린다. 저서로 ≪왕창령집(王昌齡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