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시작이 상처였던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는 피아노도, 그림도, 글 쓰기, 공부(특히 영어와 수학)도 상처로 출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해 보자면 위의 네 가지는 제게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만 짧게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피아노는 잘 치는 친구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싫다고 하며 한 번 쳐줄 테니 외워서 치라고 했었습니다.
그림은 미술 학원 선생님이 하늘을 보라색으로 그린 저의 손등을 때리며 많은 친구들 앞에서 누가 하늘을 보라색으로 그리냐면서 저희 부모님께 저를 특이한 아이라고 했었습니다.(제가 본 하늘에는 분명 보라색이 있었고, 지금도 보라색이 있지 않나요?)
글 쓰기는 고3 때 작가 등단이 너무 하고 싶어서 야간 자율 학습 시간과 새벽 밤을 새워 가며 완성한 소설을 제출하러 갔었어야 하는 마감일이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 30분만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교무실에서 큰 소리를 들으면서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처음으로 야자를 뺀(?) 날이었습니다.
수학 공부만 이야기해 보자면, 학습지에서 구구단 진도를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학교에서는 구구단 진도를 나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학습지 선생님께서 "아직도 구구단을 모르면 어떡하니? 창피한 일인 줄 알아야지."(큰 상처여서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하셔서 울면서 구구단을 외웠습니다.
피아노는 교회나 다른 곳에서 적절히 칠 기회가 있었고, 글 쓰기도 전공과 그나마 밀접했고, 수학 공부는 어쩔 수 없이 했어야 해서 모두 다 하고는 있었지만 그림은 제가 마음 먹는 일이 아니라면 그릴 일이 없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항상 부러워하고, 전시회에 가도 그림은 나와 관계 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색깔 조합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옷을 입을 때도 가구 배치를 할 때도 꽃 꽂이를 할 때도 색 조합을 아주 좋아합니다. 우연히 원데이 클래스에서 백드롭 페인팅을 접해보고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은 보라색이어도 괜찮고 이미 수많은 화가들은 하늘에서 보라색을 보았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땅도 보라색으로 그린답니다.
상처에서 출발한 그림이었지만 저에게도 아름다움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릴 때면 그 상처가 떠오르곤 하지만, 제 상처보다 제 아름다움이 더 크고, 제 상처보다 저의 예술이 더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