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은 저의 열세 번째 생일 파티 날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저의 생일입니다.
친한 언니가 저에게 오늘 선물을 건넸습니다.
"짠, 미리 주는 선물이에요. 지난 번에 이 텀블러 갖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워요 언니. 갖고 싶었던 것 맞아요."
"생일 날에는 남편이랑 같이 파티도 하고 그래요? 생일이면 신나지 않아요?"
"생일을 어렸을 때부터 잘 못 즐겨요. 그래서 생일파티 안 한 지 오래됐어요."
"그럼 친구들이랑 생일 파티 안 한 지 얼마나 오래 된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한 번인가 두 번 해보고 안 해봤어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크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 당시에도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힘이 아주 센 여자 아이가 저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낸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2003년, 5월 어느 날.
친구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초대할 친구들도 겨우겨우 부탁해서 두세 명 정도였습니다.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친구들이 학원 가야 해서 다들 바쁘다고.
그 두세 명도 제 생일파티에 온다는 건 주동자 아이에게 약간의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어서 제 생일파티에 몰래 왔습니다.
2003년, 5월 31일.
그러다가 갑자기 대략 열 명 정도나 되는 친구들이 제 생일 날, 생일파티에 오겠다고 합니다.
친구가 없던 저는 눈물나게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집으로 다 데려왔고
음식을 잔뜩 해놓은 엄마는 신이 났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들끼리 수군수군 귓속말을 하더니 음식을 먹다 말고 나갔습니다.
몰래 도전장을 내밀었던 비밀 멤버 두세 명 중 한 명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ㅇㅇ아, 너 생일 파티 되게 재미없대. 그리고 음식 맛없다고 하래. 미안해 나 갈게."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왜 나가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크나큰 아픔이었지만,
이제는 저의 한 결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봅니다.
아픔은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카페에서 크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답답하고 아플까,
실수로 쳐서 떨어뜨린 꽃잎을 보며 얼마나 아플까,
오랫동안 보지 못한 고양이와 다시 만났을 때 고양이가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오늘도 내게 깊게 새겨진 여러 결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결들이 저를 살아 있게 하고 저답게 만들어 줍니다.
내일은 또 저의 어떤 결이 살아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