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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스터 박종찬 Oct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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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 일기장

2019년 겨울.

대형 카페에서 일할 때였다. 그곳에선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커피 교육을 해주곤 했는데, 이번에 들어야 하는 교육은 로스팅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리스타 전 직원 필참 교육이었다.


귀찮았지만, 필참이니깐 별생각 없이 교육장으로 갔다.


이론은 책, 학교에서 수없이 보고 들었던 내용이었다. 다만 머릿속에 안 남아있었을 뿐...

그리고 찾아온 실습시간. 나에게 주어진 로스팅 횟수는 단 한 번이었다.


샘플을 로스팅하는 기계라 한번 로스팅하면 80g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교육 팀장님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어떻게 로스팅을 해야 하는지 큰 가이드라인을 잡아주셨다. 그리고 일단은 열심히 로스팅을 했다.


실습이 끝난 후, 다 같이 테스트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볶은 커피와 내 커피를 비교해보면서 테스트를 했다. 난 팀장님이 하신 대로 똑같이 따라 했고, 무난하게 볶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커피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진짜 별거 아닌데 그게 시작이었다.


'똑같이 했는데 왜...' 


내가 볶은 커피는 왜 맛이 없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한번 더 하면 맛있게 볶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교육 이후로 온통 로스팅 생각뿐이었다. 언젠간 다시 한번 로스팅을 할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2020년 4월.

전라도 광주에서 커피를 하던 중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다. 친구는 일을 그만두고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로 다시 올라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카페가 있는데, 여기서 같이 일해볼래?"라며 연락이 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장을 옮기겠다고 다짐했다. 나름 큰 회사에 다녔던 터라 주변 사람들은 걱정의 눈으로 날 바라봤다.


"잘 다니던 직장 뭣하러 그만두냐"

"좀만 더 버티고 더 큰 회사로 옮겨야지."

"옮길 거면 이름 있는 곳으로 옮겨야지."

"나이 먹으면 오래 못하는데, 그거 경력단절이다."


사실 그중에서 틀린 말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생각 없이 옮긴 것 같아 보였지만, 내가 아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바로 로스팅 때문이었다. 이직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로스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20년 5월.

설레는 마음으로 다니던 카페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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