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따로따로 살 수 없다더라.
<커버 이미지- 몇 년 전 우리 삼대 모녀가 함께한 제주도 여행 중 한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새싹이 자라 잎을 틔우고, 꽃봉오리에서 서서히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그렇게 키우고, 내 인생을 피워 주셨겠지.
종종 이제 막 본격적으로 세상살이를 시작하는 이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기를, 그래서 스스로 인생을 활짝 피우고, 그 인생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살이, 그거 ‘패키지 딜’이다.
기쁨, 슬픔, 즐거움, 괴로움…
한 묶음으로만 팔지,
따로따로 살 수 없더라.
- 김근희 회장(벽산 엔지니어링)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
수년 전에 신문기사에서 이 내용을 보고 어찌나 와닿던지, 메모장에 글귀를 적어뒀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른들, 위인들, 선인들의 이야기는 인생살이의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결국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의 생각과 말이 대부분 옳다는 것, 그래서 어른들 말 잘 들어 손해 볼 것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을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맞이하게 된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
슬픔이 있어 기쁨을 느끼고, 괴로움이 있어 즐거움도 있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나서 새로 배우는 듯이 실감하고 있다. 죽다 살아난 것 같은 삶의 순간순간은 어쩐지 소중한 인생을 거저 얻은 듯한 기적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음이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해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내고, 병실 안의 작은 창문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 풍경을 암담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때, 그저 매일의 생활이었던 풍경이 내가 갈 수 없는 멀고 먼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던 것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을 기꺼이 맞는다. 한 발짝도 내디디기 어려웠던 그 발로 저 거리의 그 누구보다 더 경쾌한 걸음으로 활보한다.
태어나서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음식을 먹으며 배워가는 것처럼 음식을 음미하고, 가까운 사람들부터 하나씩 둘씩 다시 연결하여 만나고 있는 요즘 나의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설렘'이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 매해 새 학년을 맞이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던 때와 같은 그런 설렘. 이 골목 끝에서 모퉁이를 돌면 또 어떤 다른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질까에 대한 설렘. 한 때의 절망에서 그러한 설렘으로 나를 끌어내어 준 것은, 모두 내 인생 어느 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 머물러 주었던 사람들의 힘과 사랑이었다.
인생살이는 패키지 딜
김근희 회장님의 말처럼, 인생살이 이거 정말 '패키지 딜'이 틀림없다. 그것도 내 멋대로 옵션을 건너뛰거나 추가할 수도 없는 깐깐한 패키지인 데다, 절대 교환도 환불도 어려운 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원한적 없는 일이 - 좋은 일 그리고 나쁜 일 모두 불시에 서프라이즈처럼 생기는 것이 인생이었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패키지를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만 따로 골라서 살 수 없는 한 묶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결핍을 겪어봐야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불행을 알아야 진정한 행복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리였다. 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 걸음마에서 댄싱 스텝을 다시 밟으며 이러한 삶의 진리를 매일 다시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