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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12. 2022

함이 없이 하고, 줌이 없이 주기로

고맙지만 안 고마워! 안 미안해서 미안해!(2)

<커버 이미지- ‘Are you a giver or a taker? (당신은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받는 사람입니까?)’ Copyright-BrainFall>

누구에게나 Giver(기버; 주는 사람)인 사수가 나의 이전 글을 읽은 후 멀리 미국에서 메시지를 보내셨다.


오늘 자기 글 때문에 깨달은 중요한 사실.  
난 그 이후로 큰 머핀은 사지 않고, 한입에 쏙 들어가는 머핀을 사고 있었어. 애들 먹기 편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의  무의식의 세계가 큰 머핀을 거부하고 있었네. ^^ 글 올려줘서 고마워.


나는, 그거 참 웃픈 결과라고, 이젠 크고 맛있는 머핀 사서 맛있게 드시라고 답을 보내드렸다.


나도 언제나 주는 것이 더 마음 편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는 것이 너무 고맙거나 부담되기도 하고, 미안함과 신세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곧 상대에게 뭘로든 꼭 보답을 해야 했다.

산재 승인 후 공단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받는 중인데, 타인의 호의나 선물을 기쁘게만 받지 못하는 것도 균형이 깨진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Give and Take’(기브 앤드 테이크; 주기와 받기)라는 책을 쓴 저자 Adam Grant(애덤 그랜트)의 TED 강연을 보며, 그가 말한 세 종류의 사람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글 끝에 강의 영상 첨부합니다.)


<애덤 그랜트가 저서에서 말하는 사람의 세 유형 Copyright-조선일보.>






잊지 못할 빼빼로데이와 유통기한 임박 땡처리(!)


내가 입사하고 얼마 후 우리 부서 업무 중 한 파트에 경력직 한 사람이 더 충원되었다. 당연히 나이도 경력도 나보다 선배였으므로, 내게는 양쪽 업무에 선배님들을 각각 한 분씩 두게 되었다.


새로 온 분은 개성이 넘치는 만큼 독특함이 외형으로도 드러났는데, 그 하는 행동들은 더욱 특이했다. 그래서 내 생에 잊지 못할 사람 중의 하나로 남았다.



어느 11월 11일 출근을 하니, 내 책상 위에 티슈 한 장이 곱게 깔려있었다. ‘뭐지?’ 하며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빼빼로 과자 ‘한 개’였다. 포장단위 하나가 아닌 낱개 스틱 1개가 티슈 위에 누워있었다. 게다가 부러진 과자 모양을 이어보려는 듯 정성스럽게 맞붙여 둔 것이 엿보였다.


아이들이 과자를 주고받는 그런 날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들기도 했지만, 그걸 받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 기분은 뭐랄까, 이상했다. 그런데 준 사람이 오늘 빼빼로데이라고, 당신이 준거라 생색을 내니 인사를 하긴 해야 했다.

진심 고맙다고 하기도, 부러진 빼빼로 한 개를 기분 좋게 먹기도 거시기한… 참으로 뭣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기행(?!)은 그 하나로 멈추지 않았다.

우유와 요구르트를 한 보따리 싸들고 출근해서는 우리에게 막 뿌리듯이 나눠주면서 말했다.


“이것들이 집에 쌓여있는데 유통기한 임박이라서요.”


또 어느 날은 금귤보다 조금 더 크다 싶은 조그마한 귤을 까서 그걸 조각조각 내어 우리에게 한쪽씩 내밀었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국이면 위생을 핑계로라도 거절할 텐데.) 그걸 받아서 고맙다고 먹기가 어쩐지 몸도 맘도 다 꺼림칙했다.


어느 복날에는 삼계탕집으로 부서가 회식을 갔는데, 우리가 주문을 하자마자 그녀가 식당 아주머니께 요구했다.


“삼계탕 중 하나는 반 마리 포장해 주세요.”


뚝배기에 나오는 작은 삼계탕인데 그걸 나누어 싸 달라니 아주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민망함은 그녀를 뺀 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알기로 아주 적게 먹는 사람도 아닌데, 회사 사람들과 회식에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어느 날은 어쩐 일로 나에게 유명 카페 커피 원두 한 봉지를 선물했다. 본인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선물을 받았다고, 커피를 즐기는 나에게 주고 싶다 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며칠 후 나도 간식을 준비해 그녀에게 보답했다.


그런데 얼마 후 마셔보려고 집에서 다시 본 그 원두는 유통기한이 수개월 지난 것이었다. 천하에 별다방 원두 아니라 별 할아버지라도 쓰레기통으로 직행이었다.

어쩐지 나의 기분도 유통기한 경과된 음식처럼 상해버렸다.


그렇게 그녀는 유통기한 임박 땡처리(?!)를 즐겨하고, 진심으로 고마워할 수 없는 ‘애매한 호의’를 종종 베풀었다. 반면 나의 사수와 나는 큰 귤이나 과자들을 몇 꾸러미 사 와서 두세 개씩 나누거나, 사무실에서 쓰면 좋을 새 물건을 사게 되면 꼭 옆에 사람 것까지 사서 주곤 했다. 그렇게 보란 듯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곁에서도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본인만의 스타일을 유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래서는 일을 배울 수도, 인간미를 배울 수도 없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그 선배를 따르는 커리어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포기했다.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극심한 Taker(테이커; 받는 사람/취하는 사람) 성향이었던 부서장과 그 선배가 잘 지낼 리 만무했다. 서로 몇 차례 큰 트러블을 일으키고, 결국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나는 흑과 백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선배를 보며,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 둘 다를 배웠다. 흑으로부터 때때로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분 나쁜 일들을 겪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필요했고, 심지어 좋은 ‘인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나는 정말로 보통의 사회인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삶에 교훈을 얻는 데는 giver(기버)와 taker(테이커) 모두가 필요함이 맞았다. 그러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격려도 감사도 좀처럼 하지 않는 D팀장의 출장 선물


몇 년이 또 흘러 (결국 나의 십년지기 팀장이었던) D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종류의 ‘빼빼로 선배’를 새로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양파 껍질처럼 새로운 면모를 계속해서 벗어 보였다.


미우나 고우나 내 하나뿐인 팀장이고, 넷이었던 팀 인원이 줄어 둘이 남기까지… 우리 둘의 운명이 한 배를 타고 많은 풍랑을 겪은 만큼, 나는 팀장이자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에 대한 예우를 최선으로 하려고 애썼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나의 인내심이 뚜껑을 열고 날아가기 전까지는.


글에서 사람 험담을 하는 것 같은 꼴이 될까 걱정이지만, 내 인생 성인기에 가족 다음으로 가깝고 중요한 사람이었고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줬다. 또 그만큼 많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

결국 마흔 평생 인간적으로 관계를 손절한 유2한-나에게 너무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그 전까진 전 남편이 유일했다.)



새해를 맞아 팀 점심을 하자해서 막내들까지 같이 식사를 한 후, 애들에게 100원짜리까지 나누어 내도록 했다. 팀장이라고 무조건 밥을 사라는 건 아니지만,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세요.’라고는 다 같이 나눠먹는 애피타이저나 디저트 하나도 쪼개서 계산을 했다.

밥 한 번을 안 사면서 매주 팀 점심을 강제하니, 어린 후배들은 불편하고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D와 사이가 나빠진 한 후배는 팀 점심이라고 끌려는 갔지만 압력솥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말없이 밥만 먹고, 볼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난다며 자기 것만 계산하고 먼저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주 1회 팀 점심은 계속되었다.

후배들 보기에 민망하고 불편한 건 나만의 몫인가 싶은 답답함이 쌓였다.


하나뿐인 팀장이니 생일 축하는 해야 도리라고 생각했다.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면전에 대고 축하를 하면 겸연쩍을 것 같아, 매번 미리 준비한 축하카드와 선물을 건네고 도망치듯 퇴근하곤 했다. 그런데 한 3년째 똑같이 해도 고맙다는 인사 한 번을 받지 못했다. 아무리 말이 없어도… 쑥스러우면 문자나 이메일로 한마디 할 만도 한데…신기할 정도로 무반응이었다.

그래서 나는 첫 3년 이후 혼자 허공에 대고 하던 축하를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회사 특성상 아-태 본부가 있는 싱가포르나 유럽으로 또 기타 다른 나라들로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자주 있었다. 외국인 매니저들 뿐 아니라 누구든 해외출장에 다녀오면서는 초콜릿이나 작은 선물들을 사 와 인사와 함께 나누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도 역시 보고 배운 대로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강제나 필수가 아니니 아예 빈손으로 깔끔하게(!) 돌아오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까 그건 그거대로 이해하면 될 일이었다.


회사 입사 몇 년 동안 해외 출장을 한 번도 갈 일이 없던 D가, 우리 조직이 변경되면서 처음으로 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부서장은 우리 둘을 앉혀놓고, 그 미팅에 둘 다 보내면 좋겠지만 부서 예산 문제도 있고 하니 팀장만 다녀오도록 하라고 나의 양해를 구했다.


일주일여의 첫 해외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한 D는 조용히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뭔가를 수줍은 듯 내밀었다.


“J님, 저 잘 다녀왔어요. 이거 별 거 아니지만…”


<낱개 티백 1개는 선물일까 아닐까?! - 직접 촬영한 티백 하나>


이런 낱개 티백 하나였다. 무슨 과일허브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장이 팀을 대표해 첫 해외출장을 유럽으로 다녀왔는데,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아니, 그냥 회사 생활을 통틀어 내가 그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호텔방에 있던 걸 하나 가져와 주는 걸까…?

어쩐지 받는 내가 더 부끄러운 얼굴로,


“아 잘 다녀오셨어요?

감사해요, 잘 마실게요.”


라고 인사를 하긴 했는데, 곧 예전 빼빼로데이의 기억이 데자뷔 되면서 난 그때와 다름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같이 티타임을 하며 한 잔 주지.


그렇게 그녀는 나와 접점이 없는 평행선을 점점 더 길게 그어갔다.


(몇년 후 보다못한 부서장은 직접 D를 가르쳤다. 팀장이고 연장자이니 부하직원들에게 밥도 좀 사고, 비공식 팀회식으로 술도 한 잔씩 사고 그러라고… 그래서 몇 번 밥과 술을 얻어먹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다.)






그 불편함의 정체-고맙지만 안 고마운 마음


이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 내 여고시절 친구들은, 일단 믿을 수 없어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인 회사 아니냐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창피해 어디 다른 데 가서는 말 못 하는 이야기들이라고 하니,  친구들은 혹시 상대가 널 모욕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은 그만큼 악인은 아닌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상태로 굳어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받은 것들은 좀처럼 덥석 먹거나 가지고 있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또 불편했다.

설명할 수 없던 그 이상한 기분이 무엇인지 나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바로, ‘고맙지만 안 고마운’ 내 마음이었다.

감사를 표현하는데 진심으로 할 수 없는 감사는, 사람에게 그토록 개운치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저런 사람들과 사건들을 겪으며 나는 두 가지를 다짐했다.


‘함이 없이 하고, 줌이 없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맙지만 안 고마워! 안 미안해서 미안해! - 라는 말을 들을만한 행동은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기독교의 율법이나,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라는 자만심이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푼다는 불교의 ‘무주상보시’는 그냥 있는 가르침이 아니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한다면 하지 않은 것처럼 해야 진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을 준다면 줌이 없이 주어야 진짜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몸소 겪은 위의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세상 곳곳에서 타인들을 만날 때 내 마음과 태도를 다듬고 또 다듬는다. 한낱 인간으로서 언제나 쉬운 마음과 실천은 아니기에.


가장 중요한 , ‘껍데기만 호의’이거나 ‘상대가 원치 않는 호의 진짜 호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리고 ‘감사’와 ‘존경’은 절대로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받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당신은 Giver(기버)입니까,
혹은 Taker(테이커)입니까,
아니면 Matcher(매처)입니까?



https://youtu.be/K9jrzmzMN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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