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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May 09. 2022

삶은 언제나 ‘다행’

산재 승인 이후

<커버 이미지- 역병 창궐 전 회사 동료들과 함께 한 잔 했던 주점에서 직접 찍은 사진>

난 별 걱정 없던 때였던 것 같은데, 말 없는 벽이 걱정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듯했다. 술 한 잔으로 알코올 소독될 만큼의 걱정은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한 걱정이지 않을까.






산재 승인 후 진행된 일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가 산업재해 요양 승인을 받은 후 회사는 1년의 유급휴가를 주는 것으로 우선 터져버린 나를 봉합했다. 급여를 100%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조치였다.

아직도 종종 ‘인원 정리를 못 하고 있어서 부서 예산이 마이너스 나고 있다’고 했던 팀장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는 일도 안 하면서 월급을 받으니 부잣집 딸을 너머 공주 같다고 더 비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가끔씩 회사와 그들이 꿈에 나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체감하는 나의 상태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이나 재해로 요양 승인을 받게 되면 해당 질병에 대한 치료비와 약제비는 산재보험으로 모두 처리가 되므로 본인 부담금은 없다. 그리고 회사가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 공단에서 평균 임금의 70% 정도의 요양급여를 지급하게 되어있다.

아울러 공단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통해 원직장에 복귀를 할 수 있도록, 혹은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심신 재활에 필요한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산재 승인이 되고 얼마 후 공단에서 담당자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J님께서 치료 중이신 병원 담당의께서 심리상담을 권유하셨습니다. 공단에서 10회의 무료 심리상담을 제공해 드리게 되는데, 받아 보시겠어요?”


나는 대답을 조금 주저하다가, 그리 하겠노라 했다. 상담사가 정해지면 그가 직접 연락을 할 것이고, 일정과 장소 등은 직접 조정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상담사 선생님을 만났다.

심리상담은 대면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코로나 상황에 맞추어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위기관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고 계시고, 나처럼 회사에서 일이 생긴 사람들은 물론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과 같은 중독 문제를 다루기도 하신다고 했다.


회사에서 일어난 사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그 당시 나의 감정과 이후 시간이 흐르는 과정에서 겪은 나의 감정과 변화들을 세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어떤 일이나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내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나라는 사람의 타고난 기질은 물론 성장과정과 부모님들과의 관계까지-아주 깊고 오래된 일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산재가 승인되면, 공단은 나의 주치의가 작성한 ‘치료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그 문서에 재해자의 현재 상태와, 취업 가능 유무, 어떤 치료가 진행되고 또 예정인지를 자세히 기술해야 한다. 이 치료 계획서는 3개월의 기간을 기준으로 하고, 그 기간 후에도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추가로 계획서를 작성하여 기간 만료 전에 제출을 해야 한다.


아직 내가 그 스트레스 원인인 장소와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담당 교수님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계획서를 써 주셨고 공단에 접수가 들어갔다.


근로복지공단 **지사입니다. 고객님이 제출한 민원서류 관련하여 자문 의사 회의가 4월 29일(금) 15:30분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있을 예정이오니, 시간에 맞게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초에 요양승인 판정위원회만 참석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양 기간을 연장하려면 의사의 자세한 소견이 있어도 공단의 자문 의사회가 별도로 있고, 내가 직접 참석해야 하는 거였다.



공단에 도착하자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자분이 서류 작성을 하나 요청하여 보니, 그날 이동한 교통수단과 이동 경로를 기입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를 근거로 공단 출석을 위한 ‘교통비’를 지급해 준다고 했다. (이틀 후엔가 버스비 몇 천원이 ‘요양비’라는 이름으로 입금되었다.)


내 순서가 되어 회의실로 들어가니, 판정위원회의 엄중한 분위기와 다를 바가 없는 그곳에 이번에는 흰 가운을 입어 의사들임을 보여주는 분들이 예닐곱 분 앉아있었다.


“요즘 생활과 기분은 좀 어떠세요?”


“처음 병원에 갈 때를 생각하면 일상으로 많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못 했고, 회사에 병가 제출도 제가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좀 살아난 것 같으니까… 가족을 비롯해 모든 주변 사람들이 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들 말해요. 공식적으로 이렇게 산재가 승인되었는데, 그러니 더욱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요.

저는 괜찮을지… 아직 잘 모르겠어서 혼란스럽고, 푸시받는 기분이 들어요. 모든 것이 그대로인 그 자리로, 그대로가 아닌 제가 돌아가면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그런 생각들을 하면 부담스럽습니다.”


“약은 처음 처방받으신 그대로를 계속 드시고 계시는 건가요?”


“네, 산재 대상은 아니지만 그때 고혈압 판정을 받았는데… 심장내과 교수님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도 모두 다 약을 줄이자거나 그만 먹으라고 안 하시네요. 저는 정말 너무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공부를 하시고, 자격증을 취득하셨네요?”


“아… 그건 아니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불안한 마음 때문에요. 그냥 혼자서 독학을 시작했는데, 아직 자격증을 받은 건 아닙니다.”


심리상담 10회 동안 진행된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구나, 싶었다.


“네, 아직 회사에 복귀하시는 건 부담스러우신가 보네요. 다른 선생님들 추가 질문 있으신지요?

J님, 저희가 회의 후에 결정을 해서 결과 전달드리겠습니다.”






언제나 다행인 인생이라서


생각보다 빨리, 이틀 만에 결과를 받았다.


[근로복지공단]***님 진료계획 승인(04/26-07/25 통원) 공단은 재활스포츠, 직업훈련, 취업지원, 작업능력 강화 프로그램, 사업주 직장복귀지원금 등 재활사업을 지원합니다.


 https://www.comwel.or.kr/comwel/reha/totl.jsp


역시 3개월 기준으로 치료계획이 승인되었다.

또 한 고개를 넘었다. 다행이다.



살면서 그냥 아예 안 일어났으면 좋을 그런 일들도 많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들을 겪는 걸까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는 그 흔한 말이 내 뼛속에 새겨지도록 결국 나는 늘,


‘다행이다, 이만해서 다행이다.’


를 기도처럼 읊으며 살고 있다.


돌아보면 이제까지 나의 인생은 언제나 참,

‘다행’

이었다.




‘인생 행복-불행 총량의 법칙’을 믿어보자.

당신의 인생도 알고보면 언제나 다행일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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