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바쓰J May 15. 2022

절벽 아래로 던져 준 로프와 잡고 올라오는 힘

우울증 약 & 운동 칵테일의 효과와 부작용

<커버 이미지- 오랜 사회 선배님이 보내주신 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글/그림:찰리 맥커시글)의 어느 페이지>

이 그림책이 너무 좋다. 어느 페이지를 넘겨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 그대로,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와닿는 글과 그림이 있다. 처음에 보는 데는 5분도 안 걸리고, 다시 보면 몇 시간도 볼 수 있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울증 약-내가 겪은 부작용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들은 우선 불면에 시달리던 나를 잠들게 했다. 그런데 적응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초반 한 달여 넘게는 몽롱하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기도 했다. 잠을 못 자서 난 병을 고치려는데 그간 못 잔 잠이 한꺼번에 오는 듯 하니, 하루의 생활이 회사를 다닐 때처럼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종종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가장 좋은 하루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매일의 기도 같은 말이 되었다.


치료를 받기 전 잠을 못 잘수록 입맛도 더 없어져서 아무것도 못 먹다가 병원에서부터 밥을 좀 먹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후 점점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10킬로 가까이 빠졌던 몸무게가 단기간에 다시 모두 복구되고, 심지어 그 이상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조금씩 무럭무럭(!) 체중계 숫자가 올라갔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먹는 양과 한층 늘린 운동량을 고려할 때 그렇게까지 불어날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우울증 약을 먹고 살이 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꽤 많이 보였다. 또 한편은 식욕부진에 살이 빠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약마다 사람마다 그 효과도 부작용도 제각각인 모양이었다.

약품 설명서에는 ‘자살사고가 증가한다’ 거나 하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쓰여 있어서 겁이 나기도 했는데, 나는 살찌는 문제와 입이 많이 말라 갈증이 나는 것 외에 다른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 선생님의 당부와 복약지도문의 내용처럼 꾸준히 복용한 2주 정도 지나갈 무렵부터, 나는 아무것도 못 하던 무기력 상태에서 아주 조금씩 벗어났다.


약을 줄이다가 완전히 끊고, 이후 원래의 내 에너지와 기분 수준을 찾는 것까지 되어야 ‘완전히 괜찮은 상태’ 즉 완쾌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약을 먹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숙제일 것이고.

내가 입원했던 병동은 보호병동/폐쇄병동임과 동시에 재활병동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 말 그대로 나는 아프기 이전처럼 다시 활동을 해야 하고, 하루빨리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다 나았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스스로의 의지를 넘어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진 사람은 진짜 늪처럼 혼자 힘으로는 탈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또 의사 소견에 따라 약물 복용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정신건강의학과의 약들은, 마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 사람에게 구조 로프를 던져준 것과 같지만 그렇다고 절벽 위로 완전히 안전하게 끌어올려다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절벽에서 내려받은 줄을 타고 올라와야 하는 것은 스스로이고, 자신의 의지와 힘만이 그 자신을 우울의 늪에서 구원할 수 있다.






운동 그리고 또 운동


TV의 수많은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질병/질환을 다룰 때,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질환을 이야기하는데도, 끝에서 모든 건강 관련 문제는 운동과 식습관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운동이, 정신건강에도 그랬다.

걸음마 같은 산책에서부터 ‘운동’이라고 할 만한 걷기를 하게 된 후로, 나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그래서 예전에 하던 줌바(강도가 꽤 높은 라틴댄스 베이스 유산소 운동)와 필라테스/발레핏을 겸한 근육운동들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강도가 높아진 운동으로 옷과 머리칼이 모두 다 흠뻑 젖을 만큼 땀을 흘리고 나면, 기운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활기차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밥을 먹는 것보다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계획할 때 아침이든 저녁이든 1시간 이상의 운동 일정을 꼭 챙기며 지내는 중이다.


밥 먹기, 책 읽기, 글쓰기, 공부하기, 사람 만나기, 세상사에 관심 갖기, 음악 듣기, TV보기, 영화관 가기… 이러한 활동들과 운동이 무슨 상관일까 싶다고?

지나와 보니, 마음을 다친 사람의 삶과 일상에 거의 모든 것들은 운동이 먼저 되지 않으면 아예 할 수 없는 것들에 가까웠다.

몸 근육과 마음 근육은 매우 깊은 상관이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운동은 몸에만 근육을 붙이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근육을 붙게 하였다.

어쩌다 우울증 환자가 되고 회복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내가 그 산증인으로서 운동의 중요성을 백번 강조하는 이유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일어서는 것만도 버거운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땐 찰리의 말처럼 그저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기만 해도 용기 있고 대단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말자.

우리, 잘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삶은 언제나 ‘다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