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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Jun 08. 2022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하는 만큼 이해하게 되는 것들

미안하다. 겪기 전엔 다 몰랐다.

<커버 이미지 - 소셜미디어에서 보고 저장해 둔 글귀. 짧든 길든 좋은 글귀들을 읽는 것을 즐겨한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도 다른 이의 입과 손을 통해 나오면 더 깊이 공감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은 당신의 영혼을 위한 햇살과 같고, 당신의 마음을 위한 약과 같은 사람들이에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따사로운 햇살과 약, 같은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마음과 일상의 회복,  다음


고장 났던 마음이 조금씩 고쳐지고, 스스로 일상을 회복한 후 점차 다시 시작한 것은 사람들과의 재회였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유치원에 간 이후로 족히 40여 년을 쭉 사람들과 섞여 사회생활과 사교생활을 단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정신이 좀 차려지면서, 동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 소식도 없이 잠적해 버린 나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하고, 궁금하고 답답했을까!'


그렇게 일어난 마음은 내가 수개월 연락을 두절했던 사람들에게 하나하나씩 손을 뻗어 인연의 끈을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친구, 선후배, 지인들의 진심 어린 '환영'을 받으며 내가 '살았던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 그리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이유'를 저절로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애인같던 친구결별의 이유


요즘 부쩍 고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 하나가 생각난다. 외동인 데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사업을 하시는 바쁜 아버지와 사는 아이라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리로 어울려 적당히 친하게 지냈던 고교시절을 지나 대학까지 같은 곳으로 가게 되면서 우리는 부쩍 더 가까워졌다. 얼마나 붙어 다녔는지 우리 엄마는 그 친구 이름에 식, 을 붙여 성전환(!)을 시키고 '재식이'라고 부르셨다. 내가 외출을 하려고 하면, "오늘도 재식이 만나러 나가니?" 라시며, 어째 청춘이 연애를 재식이랑만 하느냐고 놀리시곤 했다.


그랬던 그 친구와 어쩌다 영영 결별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깊은 우울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한 후 지금에야 비로소 진심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전에 살아온 평생, '우울이 뭔가요? - 먹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할 만큼 우울에 대한 감도 이해도 없었다. 그냥 기분이 좀 가라앉는 정도라거나, 부정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겪는 그런 기분의 변화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아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과 같았으니, 어린 시절의 상처와 성장과정에서 얻은 그 친구의 깊은 우울을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녀는 불안하고 초조하면 이마 한쪽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꼬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2-3일 중간/기말 시험을 마치고 나면 머리 한쪽이 불에 탄 수세미처럼 엉망으로 뭉쳐있곤 했다. 적당히 기분 좋게 잘 지내다가도 한 번 기분이 다운되면 옆에 있는 나의 발목까지 잡고 지하로 끌어내리는 것 같이 한없이 내려갔다. 내가 곁에서 아무리 달래고, 어르고, 응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 친구로서 무력하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나도 힘이 빠졌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이던 끝에 결국 그 친구와 나는 자연스럽게 연결의 끈을 놓았다.


그때 내가 마음건강과 기분장애 같은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이 이해하고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그 친구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나 심리상담 같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권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친구가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그네 위에서 내려오지 못 한 채 멀미 나는 삶을 버티며 지냈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알지 못해 보이지 않았고,

몸소 경험하지 못해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그녀가, 이제는 조금 편해졌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당신은 경험하지 아도 좋을 일


비교적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은 덕분에 회복도 빠르게 하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리 쉬며 말씀하셨다.  


"한 여름에 겨울 오리털 파카를 입고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었겠니?"


맞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위기를 맞아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때를 놓친 사람들이고, 어떻게 헤어 나와야 할지 방법을 몰랐고 도움을 받지 못 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겪어 보고서야 얻게 된 교훈이다.



아팠던 이야기를 전화나 메시지로 먼저 전해 듣고, 얼굴 보기로 약속을 한 지인들이 보내는 1년 만의 만남 후기는 모두 한결같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기만 했을 때는 지금 상태가 상상이 안 되고, 도대체 얼마나 어떨지 몰라서 솔직히 마음을 졸였어.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고, 막상 얼굴을 보면 어떨지 긴장이 됐었어. 그런데, 만나보니 예전 J의 모습 그대로라서 정말로 안도감이 들었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입원을 하고,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전해주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 계절에 내가 오리털 파카를 입고 나타나거나 머리에 꽃이라도 달고 나올까 봐 걱정이 앞섰고, 염려가 가시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들도 겪어보지 못해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었던 이전의 나와 같을 테다.


만나보니 그렇게 아팠던 사람이 맞느냐고 모두가 되물을 정도로 이제는 내가 정말 괜찮다는 반증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흔한 말이 뼛속 깊이 느껴질 정도로... 잘 지나왔고, 잘 이겨내었다.  

  

다 몰라도 좋고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살면서 안 겪어도 좋을 일은 안 겪고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시라도 그런 일을 피치 못해 겪게 되더라도, 먼저 한 나를 보고 들어 너무 크게 휘청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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