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을 살다보면 익숙함과 마주하게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바뀌지 않는 삶의 반경들.
무의식적인 하루를 보내고 그 무료한 시간을 값어치가 없는 무료인냥 의미없이 사용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어떻게 다르게 보일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이상
매일을 의미없이 똑같이 흘려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불현듯 찾아오는 익숙함에 대한 불편함.
그 순간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지금이 편하고 좋아.'
이 세상에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할 수 없다는 마음만 존재하는 것이다.
벌써 2년이 되었다.
내가 내 스스로를 바꾸어보려 그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익숙한 불편함을 던지려고 발악을 시작한 그날.
바로 2년 전 9월의 첫 날이다.
남자나이 마흔을 목전에 두었던 가을의 어느 날.
회사에 눈치를 보면서도 사용하겠다고 던져놓은 "육아휴직"의 계획.
생각만 하고, 말만하고 직접 행동하지는 못하고 있던 지난 날을 일부러 꺼내어본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세요!"라고 힘을 주어 던져주셨던 내 인생 스승님의 한 마디에 짐승처럼 목놓아 울면서, 왜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마음만을 안겼었는지 통곡을 했던 그날.
늦으막하게 일어나서 눈꼽만을 떼고 회사로 출근하는 일상을 던지고자 남들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훈련.
기존보다 10분을 일찍 일어나고, 또 10분을 일찍 일어나고, 또 10분을 일찍 일어나고.
1페이지던 10페이지던 책을 읽어보려 눈에 불을 켜보고,
계단을 몇 십층오르고 푸쉬업을 하고 뜀박질은 쥐약이었는데 몇백미터를 달려보고.
그렇게 나의 변곡점에서의 일상은 2년 전 오늘 시작되었다.
평범하기만했던 내 일상을 스스로 비범하게 만든 것은 새벽기상도, 독서도, 운동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찾아낸 마음 속의 작은 외침이었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라는 작은 외침, 아니 울부짖음.
그 자그마한 울부짖음을 가만히 들었던 나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같다.
내가 살아야할, 살아내야만할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들수 없었기에. 기회를 찾아내어야만 했기에.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시작된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견고하고 튼튼한 내 인생이 된다.
평범한 인생을 함부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 역시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런 평범함을 단칼에든, 서서히든 부수어뜨리고
비범함을 하나씩 쌓다보면 어느샌가 이러한 생각과 마주하게될 것이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돌아보니 별로 쌓여진 것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 같고, 힘들기만 하고.
물의 온도는 온도계로 잴 수 있기에 100˚C의 임계점을 알아챌 수 있지만,
인생의 임계점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다온 임계점 앞에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관성에 따라 원래대로 돌아가곤 한다.
내가 찾아낸 변곡점이 있다면,
무식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계속 해나가야만 한다.
그러면 수치로 보여지는 임계점이 아니라
스스로 단단하게 쌓아놓은 나의 과거와 인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비범함도 익숙해지면 평범해진다.
그 평범함을 찾았을 때, 우리는 변화했을 것이고 단단해졌을 것이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주는 의미를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일상으로 실행하자.
그렇게 내 생각과 행동을 옳게 만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