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기업에는 영업사원이 있다. 일은 힘들지만 성과만 좋으면 고연봉을 받는다는 사람들. 영업의 형태도 무수하다. B2G, B2B, B2C라는 틀 안에서 너무나 다양한 것들을 판매한다. 그 가운데 나는 주로 IT 제품 영업을 하는 이들과 함께 했다.
우선 하소연부터 하자.
3G/4G 모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당시의 일이다. 영업사원이 고객사에 거하게 구라를 쳤다. 있지도 않은 제품을 만들어서 금방 가져오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왔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A 제품에 뭐 있으니까 B랑 합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예를 들어 보겠다. 현대자동차의 영업사원이 "우리는 자동차의 엔진과 구동 기술이 있으니, 날개쪽만 빨리 개발해서 비행기를 만들어 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개발자들은 모처럼 하나가 되어 결사반대를 외쳤다. 고객사에 당장 안된다고 하던지, 그게 아니면 기간이라도 넉넉히 달라고 했다. 경험상 이런 경우 대부분은 영업사원의 의견이 반영된다. 왜냐면 회사 입장에서는 돈 벌어오겠다는데, 게으른 개발자 놈들이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소리만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그 미지의 제품을 개발해야 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총 두 분의 영업사원과 가까이 업무를 했다. 한분은 너무 무능해서 힘들었고, 다른 한분은 일을 너무 많이 따와서 힘들었다. 무능한 영업사원은 일의 경중이 없고,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가망이 없는 일에도 최선을 다 한다. 배경지식이 부족하니 혼자 다니는 걸 싫어한다. 반드시 나 같은 엔지니어를 달고 다니신다.
반대로 능력이 좋은 영업은 나를 너무 바쁘게 만들었다. 담당하는 고객 사이트가 너무 많아져서 감당이 안될 지경인데, 이렇게 바쁘게 일해야 보람 있고 재미있다고 믿는 분이었다. 나에게 할당된 사이트에서는 어떻게든 불만이 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부르면 부르는 대로 찾아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수도권의 웬만한 도로를 다 꿸 수 있었지만, 절대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몇 줄로 그들을 향한 나의 억하심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 한때는 그들의 머리엔 뿔이 있고, 뒤에는 꼬리가 달린 짐승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도 경력이 늘어가며 그들을 이해하는 부분도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건 수익창출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바로 영업사원이다. 일단 뭘 제시해야 계약이 가능하고, 때 맞춰 납품을 해야 돈이 들어온다. 실무진들은 이 전제를 바탕에 깔고 대화를 해야 할 필요는 있다. 누구 하나가 이길 때까지 죽일 듯이 싸울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현대자동차를 예시로 든다면, 비행기 까지는 아니어도 수륙양용차 정도면 협상이 가능한지 논의해봐야 한다. 영업도 결국 사람이다. 서로 '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고, 걸림돌이 될만한 걸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결국엔 영업이 이긴다. 내가 짊어질 업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영업도 결국엔 그들의 일이다. 회계부서에서 돈 계산하는 것처럼 그들은 영업을 한다. 많은 업무가 정성적인 동료들의 의견으로 평가받는 반면, 그들은 철저히 숫자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영업사원은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공수표를 남발하기도 한다. 그럴 때 실무진이 필요하다.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식이 아니라 현재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노력해서 수정/확장 가능한 범위를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되게 멋진 개발자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면 내 일만 잘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내 일을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0.8인분이다. 나머지 0.2인분은 연관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영업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무리한 방향으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도 업무이다.
우린 어차피 그들에게 진다.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