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시 기행 06
이번 주 도보여행을 나선다. 5박 6일 일정으로 수안보에서 안동까지 총 112km이다. 수안보에서 출발하는 이유는 몇 해 전 거기까지 걸어가 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수안보 일박 후 걷기 시작할 것이고, 안동에 도착하는 날은 배우자를 만나서 며칠 더 안동 여행을 즐길 예정이다.
지난번 도보여행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절대 하루에 30km 이상 걷지 말 것!" 유튜브나 블로그의 도보여행기를 보면 하루에 35km, 심지어는 40km가 넘게 걸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20km가 넘어가면 온 하체가 쑤시고, 25km가 넘어가면 정신을 반쯤 놓고 걷더라. 평소 달리기나 걷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30km가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최장거리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에 또 도보여행을 한다면, 그때는 가급적 25km 이하로만 걷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일정에서 25km를 넘게 걷는 날은 딱 하루이고, 중간 휴식일과 도착하는 날은 매우 짧은 거리만 걷고 컨디션을 회복하는데 집중하려고 한다. 배우자와 수안보에 내려갈 수 있는 날, 안동에 도착해야 하는 날 등을 고려하다 보니 조금은 여유로운 일정이 잡혔다. 물론 실제로도 여유로울지는 가봐야 아는 것이지만.
대강의 일정은 이렇다.
0일 차: 집 > 수안보(차량 이동)
1일 차: 수안보 > 문경(23km)
2일 차: 문경 > 점촌(23km)
3일 차: 점촌 > 예천(27km)
4일 차: 예천 > 경북도청(13km)
5일 차: 경북도청 > 안동역(20km)
6일 차: 안동역 > 안동 구도심(6km)
지난 도보여행은 회사에 다닐 때라 "대체 왜 걸어서 가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너 그러다 죽는 거 아니냐는 걱정까지. 그런데 도보 여행의 매력은 분명하다. 차량이나 기차를 이용하는 것과는 '친밀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수안보에서 안동까지 차를 타고 가는걸 큰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걸 한 걸음씩 걷는다면 완전히 다른 기분이다. 어느 시골길의 벤치는 내가 물집을 터뜨린 곳이고, 한적한 도로 위의 주유소는 긴박했던 나의 급X을 해결하게 해 준 소중한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주를 지나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말이 많아진다. 여기는 내가 첫날 잤던 모텔이고, 저기 언덕은 진짜 너무 힘들었지, 저 집 두부전골 진짜 맛있었는데 등등. 그냥 길이 아니고 나의 기억에 착 달라붙은 여행지에 온 기분이다. 마치 신나게 돌아다녔던 파리에 다시 온 여행자의 기분이랄까? 파리는 나를 기억 못 하더라도, 그 여행자에겐 추억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그런 느낌.
혹시 몰라 검색해보니 안동에서 부산까지는 4일이면 걸어갈 수 있겠더라. 훗날 기회가 되면 부산까지는 이 여정을 이어나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 여행이 끝나면 "또 하고는 싶은데, 못 할 것 같아."라고 할 것 같다. 지난번에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내 머릿속이 과거를 미화하기 시작하면 또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