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시 기행 05
전주에 내려가는 날은 늦게라도 가서 일박을 더 하는 편이다. 직장 다닐 때도 퇴근 후 기어코 내려갔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오원집에 가기 위해서다.
그곳은 야식집이라는 타이틀처럼 저녁에 열어 새벽까지 운영한다. 돌림병 이전에는 더 늦게까지 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새벽 3시 반에 문을 닫는다. 이름에는 여러 썰이 있다. 워낙 싸게 한 잔 걸칠 수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막걸리 한 잔에 5 원이라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현재 업주는 '오래도록 기억되길 원하는 집'으로 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전국 최초의 야식집으로 홍보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
처음 전주에 오기 전 전주 맛집을 검색해봤다. 소문답게 여러 식당들이 보였지만, 이 오원집의 메뉴 구성만큼이나 눈길을 확 끄는 곳은 없었다. 고추장 양념을 해 연탄불에 구운 돼지고기에 김밥을 올려 상추쌈을 싸 먹는다... 그 맛을 알 것 같기도 하면서도 확 잡히지 않는 생소한 조합이었다. 사실은 김밥만 빼면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맛' 일 텐데, 그 김밥의 존재감이 궁금했던 것 같다.
먼저 자리를 잡으면 오뎅 국물 한 사발이 나온다. 오뎅이 기가 막힌 건 아니지만 첫 잔 안주로 삼기엔 아쉽지 않은 정도. 그리고 공식 메뉴처럼 고추장 돼지구이에 김밥을 주문. 상추에 김밥을 하나 깔고, 고기 한 점에 마늘과 쌈장을 올려 먹는다. 그 맛은? 기가 막히다. 별거 없는데 맛있다. 참기름 향이 가득한 김밥은 상추쌈 안에 들어갔을 때 이질감이 없다. 오히려 김밥의 야채가 씹는 맛을 돋우는 기분이다.
거기에 전주의 야식집답게, 그 외 메뉴도 매우 훌륭하다. 가락국수는 출출한 속을 채우기에 제격이고, 이번에 처음 먹어본 오징어볶음은 남은 양념에 밥 비벼먹고 싶을 만큼 맛있었다. 실제 비빔용 소면도 판매하니 추가할 수 있다. (우린 너무 배불러서 포기했다.) 그리고 단골들도 다 먹어보지 못할 만큼 메뉴는 많다. 이런 거 보면 야식집 맞다.
오원집은 단품으로 승부하여 전주를 대표한다고 할만한 집은 아니다. 누군가는 삼겹살도 아닌 전지에 양념 발라 구운 걸로 맛집 운운하는 게 못마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원집에 가보면 나이 지긋한 할배들, 그리고 친구들끼리 어울려 온 젊은이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나 같은 관광객도 한 두 테이블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인가?!
야심한 밤 전주에 도착하거나, 다 먹고 들어가는데 딱 한 잔이 아쉬우면 찾아보길 권한다. 택시 기사님께 오원집 가자고 하니 "여기분이세요?"라고 물은 걸 보면, 아직은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 그들의 맛집임이 확실하다.
참고로 오원집 바로 앞에는 같은 메뉴를 파는 진미집도 있다. 하지만 난 오원집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한 번도 가보진 않았다. 물론 오원집도 나에게 그런 뜨뜻미지근한 감정이 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