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퍼스트 클래스
맷 리브스의 배트맨 프로젝트는 여러 난점들이 있었다. 팀 버튼의 기념비적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성공적인 다크 나이트가 다른 방향으로 각자가 성취한 것이 높았기에 이 시리즈는 부담감이 컸다. 그러면서도 앞에 잭 스나이더의 버전이 (일부 장점과 배우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힘을 보이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큰 도움은 되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맷 리브스와 스태프, 배우들은 위험부담이 큰 작업을 영리하게 성공시켰다. 흥행은 보아야 알겠지만 적어도 완성도에 있어서는 합격점이다. 놀라운 걸작은 아닐지라도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영화적으로는 대부, 세븐, 차이나타운이 (완성도가 아니라 )분위기나 스타일서 떠오른다. 나래이션에서는 왓치맨의 로어셰크도 떠올랐고..
아마도 (지난 30년 동안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과대평가된 영화 중 하나인)다크 나이트와 비교하면서 깍아내릴 평들이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만큼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에 기죽지 않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비교는 리부트 영화들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그런 우열 가리기로 빛을 바랠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재밌게 즐기면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장르 특성상 깔려있는 엘리트주의가 그것이다. 막말로도 나는 한 사람이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 자체를 신뢰하지 못한다.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온전히 히틀러라는 악마의 소행으로 돌릴 수 없듯이 평화와 정의도 마찬가지다.
이 설정이 배트맨으로 들어가면 더 의심스럽게 작동된다. 고담이라는 저주받은 악의 도시를 구원하는 데 과연 박쥐가면 쓰고 범죄자들을 패고 다니는 것이 도움이 될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악에 맞서싸우는 한 개인이 재벌이라는 점은 의아하다. 차라리 학교나 병원, 마약 보호시설 및 복지시설 확충에 나서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물론 이는 나의 생각없는 삐딱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 장르서 이런 지적은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하나의 질문은 유효하다.
과연 이 도시의 고통에 대기업을 운영하는 거대재벌이 책임이 없을까? 하나의 개인으로서 막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고담의 타락과 분리된 순수한 존재일까?
팀 버튼의 배트맨은 표현주의적으로 묘사된 고담에서 활동한다. 팀 버튼의 천재적인 미술감각의 힘을 얻은 고담은 그 이미지만으로도 악의 소굴이라는 것을 납득시킨다. 여기서 고담은 현실적인 도시보다는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같은 신화적/상징적(동화적)공간에 가깝다. 동시에 팀 버튼은 걸작 배트맨 리턴즈에서 펭귄, 캣우먼과 배트맨을 아웃사이더로서 공통점을 가진 캐릭터로 만드는데 이는 주효했다. 이 배트맨의 고민은 실존적이고 개인적이다.
놀란의 배트맨은 앞의 뛰어난 선배와 다른 길을 택했다. ( 비유하자면 에이리언 1, 2와 같다. 둘 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서 훌륭한 영화가 된 것과 유사하다. )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사실적인 색채를 칠했다. 놀란의 고담은 시카고나 뉴욕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비긴즈나 라이즈의 악당들의 카리스마나 완성도가 부족한 이유이기도 한데 이들 악당의 목표는 현실적인 도시에 비해 허황되고 여타 테러리스트들과 차별점이 부족하다. 현실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배트맨의 고민도 달라진다. 제도 밖에서 부정의한 방식으로 정의를 행하는 영웅의 고독과 딜레마가 강조된다. 배트맨은 나름 원칙이 있는 선인이지만 그것이 통용될 수 있나는 다른 문제다.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처럼 질문을 던지는 조커는 원칙이 없는 혼돈 그 자체고 그렇기에 배트맨한테 위협적이다.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배트맨과 조커는 겹치는데 배트맨은 악을 제거하기도 하지만 악을 생산하는 존재라는 점서 흥미롭다. 결국 배트맨이 사라지는 결말로 귀결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
역시 (의도치 않게)폭력을 창조한다.
앞의 질문을 팀 버튼은 고담을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면서 무력화시켰고 놀란은 배트맨과 그의 딜레마에 집중하면서 배트맨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반면 더 배트맨은 그 아이러니를 다룬다. 정의의 사도인 배트맨과 고담 시를 살아가는 브루스 웨인 사이의 괴리다. 영화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처럼 계급갈등을
끌어들인다. 단순히 부패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의 연쇄와 연결을 보여준다. 이 덕분에 고담은 현실적인 악의 도시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최상위계급에서 살아온 도련님 브루스 웨인은 본인 가문이 연루되어있는 악을 마주한다.
영화는 리들러와 배트맨을 쌍둥이처럼 설정했다. 둘 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시점쇼트가 존재하며 어둠 속에서 제대로 등장한다. 맨얼굴이 보여질 때는 뒷모습이 먼저 나온다. 둘 다 나름의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하며 웨인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 둘 다 일기를 쓰기도 한다. 무엇보다 둘은 고아다. 그 둘의 차이점은 리들러는 살인으로써 선을 넘었다면 배트맨은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캣우먼은 배트맨처럼 이중적인 모습과 팔코네에게 부모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역시 은유적으로 고아다. 셀리나는 선을 넘을 뻔 했다.
결국 선을 넘은 고아와 선을 넘지 않는 고아, 그 사이에 있는 고아. 총 세 고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브루스가 선인으로 확실히 남아있는 데에는 계급적인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캣우먼과 리들러가 브루스 웨인을 두고 남긴 코멘트는 그를 지적한다.
이 영화는 배트맨 못지않게 고담이라는 도시에 집중한다. 필수적인 선택인데 배트맨에게 고담이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캐릭터이면서 핵심이다. 비긴즈와 라이즈가 볼만한 영화로 그친 데에는 배트맨이 고담 밖에 있었다는 점이 크다.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은 고담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점서 실패작이다. (갓동님 ㅠㅠ) 사실상 이 영화의 악역은 리들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리들러가 소개하는 고담의 밑바닥이기도 하다.
예컨데 고위계층이 밀집해있는 클럽장면이 그 예다. 그래서 셀리나가 중요하다. 그는 브루스와 계급/인종/성별 적으로 반대인 고아다.(출중한 외모는 둘 다 있다) 클럽장면서 브루스는 말그대로 셀리나의 눈을 통해 본인이 몰랐던 세계를 본다. 그리고 그 부패한 세계에 본인 역시 일부 속해있다.
그것을 깨달은 브루스는 알프레드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알프레드는 그것은 실수였다고 본인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였고 토마스는 올바른 일을 하고자했지만 살해되었다고 말한다. 이 때 브루스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자의 상실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이 부분은 성장이다. 과거에 대한 무력함이 주는 분노에 사로잡혀있던 복수의 화신이 현재를 지키기위해 변하는 순간이고 정의를 생각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분법적인 사고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것이다.
알프레드와의 손잡기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물론 이 둘의 관계는 그 자체로 애틋하다. 다만 이 부분서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본인에 대한 모순, 과거에 대한 극복이 지나치게 많이 빨리 다루어진 점, 그 심리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다는 점, 이미지가 아닌 대사의 분량이 크다는 점은 아쉽다. 서사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여기에 좀 더 방점을 두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셀리나는 부모의 원수인 팔코네를 살해시도하지만 브루스는 부모의 원수인 팔코네를 배트맨으로서 경찰들에게 인도한다. 경찰들이 다 서있는 쇼트는 의미적으로도 멋지다.
마지막 캣우먼이 갈라지는 장면은 결국 리들러, 캣우먼과는 다른 길을 가는 고아의 장면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두운 화면으로 일관한다. 낮에 해는 뜨지 않으며 도시는 불결하다. 필름 누와르의 숨결이 배어나오는 화면들이다. 종종 화면을 가득 채우는 붉은 빛은 슈퍼히어로 장르로서 카리스마를 담는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강렬하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배트맨의 동선은 효과적이다. 공포라는 도구의 활용과 왜 배트맨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종종 사용된 부감 역시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특히 후반부의 홍수묘사서 좋다. 시각적으로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프리츠 랑, 무르나우의 색채를 덧칠한 느낌인데 균형있게 잘 구현되었다. 인물과 세계를 덮는 어둠과 콘트라스트 대비, 낮은 명도와 어두운 색조는 작품에 어울린다.
붉은 빛과 검은 색으로 세계를 구현해낸 촬영감독 그레이그 플레이저의 공도 크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고담의 풍경이 이 작품이 가지는 스펙타클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도시를 비추는 롱숏, 초반부 고담을 묘사하는 쇼트들은 그 무드에 있어서 뛰어나다.
연기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로버트 패틴슨은 피로감에 가득찬, 미숙한 브루스 웨인을 훌륭히 연기했다. 코스모폴리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피곤한 재벌이라는 점서 유사한데 그는 어찌 생각하나 궁금하다.
굿 타임 , 라이트 하우스, 하이 라이프, 테넷, 잃어버린 도시 z, 그리고 코스모폴리스 신성과 거장들, 대가의 작품들을 누비면서 출중한 연기력을 선보였는데 여기서도 좋다.
제프리 라이트, 앤디 서키스, 존 터투로, 콜린 파렐 같은 믿음직스러운 배우들도 단단히 제 몫을 해낸다.
폴 다노는 늘 그랬든 특출나다. 와일드라이프같이 섬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이런 미친 인물을 절륜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니 배우는 배우구나 싶다.
조 크래비츠는 매력이 흘러넘치는데 카리스마있게 캣우먼을 멋지게 소화했다. 걱정마 자기야 나는 목숨이 아홉 개야 하면서 뛰어내릴 때 마음도 훔쳐가는 듯 했다.
여러 면서 단단히 캐릭터나 세계를 다진 영화이다. 영화의 리듬이나 늘어지는 전개, 핵심적이고 특별한 이미지를 창조하지 못한 점(이는 맷 리브스의 단점이다. 안정적이지만 소위 말하는 충격은 부족한)은 아쉽지만 이보다 안정적인 출발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리들러의 수수께끼도 배트맨의 두뇌를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시간을 끌지 않을 정도로 잘 조절했다. Hippocratic(히포크라테스)가 대사에 나오는데 이는.Hypocrisy(위선)과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팔코네의 농담인 것 같다.
맷 리브스의 다음 배트맨을 기다리지 않을 재간이 나에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