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선생님,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뵙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꼭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상담하셨던 수많은 학부모님들 중 저와 같이 엉망인 사람이 있었을는지요.
서른이 넘은 몸뚱이 하나조차 어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마음이 아주 고단해지는 일입니다. 그땐 마음이 고단하다 못해 눈 뜨는 순간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딱히 여쭤볼 이유가 없는 질문입니다만 선생님의 답이 궁금해 여쭤봅니다. 당시의 저와 같이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가느다란 힘만으로도 버티고 있는 부모님들이 계신지요. 답은 어쩌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깟 '이름'이 무엇이고 '호칭'이 무어라고 그리도 목숨 걸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모라는 이름으로 버티고들 계시겠지요. 저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름'의 힘만으로 '버티고' 있진 않습니다. 저와 아이는 힘겹게 나온 동굴에서 이제야 막 따뜻한 햇빛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또 다른 동굴을 지날 수도 있겠지요. 아마 지금보다 더 험하고 추운 동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젠 휴대폰 불빛을 켜는 법도 알았고,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따라오라고 손짓하기보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머리로 깨우친 저의 내력을 마음으로 열심히 밀어 넣고 있는 중입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왔다 생각했습니다. 또래보다 말이 늦었고 그래서 아이들과의 관계형성을 힘들어했던 아이, 말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 오해를 사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어린이집과 관련된 어른들과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반 학부모님, 담임선생님, 원장선생님까지, 모든 분들에게 사과하고 다니는 게 많이 익숙했습니다. 아이도 또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뭘 미안해해야 하는 건지 설명해 주는 엄마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어른도 없었지요.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또래보다 말이 느리니 언어수업에 꼬박꼬박, 말보다 행동이 앞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먹부터 나가는 아이였기에 미술심리치료도 함께 병행했습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언어수업도, 미술심리치료에서도 부모 상담을 받은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아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제 마음이 편했습니다.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던 부분이니까요.
처음 뵈었던 그날이 기억나네요. 학교에 입학해서도 산만하고 부산스러웠던 아이의 행동 때문에 신청했던 선생님과의 상담이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가을이었군요.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께 꾸중 같지 않은 꾸중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기억하실는지요.
"어머니, 아이는 전혀 문제 있는 아이가 아니에요. 또래 아이들보다 이해가 조금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실 수준이 아니고 책만 꾸준히 읽는다면 해결될 문제예요. 그보다 시급한 건 아이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데 엄마는 자길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해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자길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줄은 몰랐지만 아이의 말이 납득되기도 했습니다. 늘 똑같은 말투에 표정도 다양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오은영 박사 같지 않고 모두가 리액션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지 않겠느냐 생각했지만 그 정도 일 줄은 저도 몰랐지요.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줄은 정말 몰랐지요.
"어머님, 아이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어머님을 너무 사랑하고, 어머님을 기다려 줄 수 있는 아이예요. 어쩌면 어른인 저희보다 더 참을성이 많을 수도 있고요. 엄마가 자길 바라봐 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는."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렇군요"라고. 이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너무 무미건조해 보일까 꺼내지 못했습니다. 제 입에서 아이와 관련되어 나오는 모든 말들은 늘 신중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주 건조하고 무덤덤해 보인다고 했죠. 그래서 선생님께도 차마 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했단 뜻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저의 성향을 너무 단박에 알아채셔서 달리 설명해 드릴 필요도 없이 제 성격에 맞게 아이에게 꾸준히 사랑한단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저는 좀 신기했습니다. 티브이로만 배운 육아는 늘 엄마가 활기차고 밝으며 표현이 무척 컸던 것과 달리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어머님이 갖고 계신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된다는 것을 강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과장된 리액션과 단어를 쓰지 않아도, 그러니까 '저'라는 인격 그대로를 존중하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는 법을 알려주셨다는 건 '나' 자체도 선생님께 존중받는 기분이었죠.
1000피스짜리 풍경화 퍼즐을 이제 막 시작한 기분이었습니다. 모서리는 모양대로 얼추 맞춰놓았고, 나무 부분은 초록색 퍼즐들만, 잔디밭 부분은 연두색 퍼즐들만 푸른 호수 부분은 푸른색 퍼즐만 따로 분리해 둔 기분이랄까요. 자, 이제 색을 분리했으니 맞춰야겠죠.
"아이야" 하며 부르면 멀뚱한 얼굴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평소와 같이 멀뚱한 얼굴로 얘기합니다.
"너는 네가 아주 잘생긴 거 알고 있니?"
그러면 아이가 씩 웃습니다. "나는 알고 있는데."라고 대답해 주면 또 멀뚱한 얼굴로 절 쳐다봅니다.
"너는 엄마 아들이니까 잘생겼지." 그러면 또 씩 웃습니다. 그리곤 둘 다 아무 말도 않은 채 핸드폰을 봅니다. 그게 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아이야." 부르고 잠깐의 정적을 두었습니다. 눈을 맞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하는 것이 바빠 눈을 맞출 시간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저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할까, 제 입만 쳐다보는 아이를 보며 할 말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아이도 덩달아 허탈하게 웃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전에는 그조차도 못해보았으니까요. 세상 가장 사랑하는 눈빛으로 지그시 쳐다보고 있으면, 그러다 보면 정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가 절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도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눈은 말보다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ADHD 성향이 강해 약물치료도 함께 병행하고 있지만 행동의 규제보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안정감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아이에게 꾸준히 사랑하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현재 몰라보게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또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물론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있고, 무리에서 따로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괜찮은지를 물었고, 아이는 가끔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를 자청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네 마음이 편할 때, 같이 놀고 싶을 때 가서 놀아도 돼. 꼭 친구들과 매일 놀지 않아도 돼."라고 했지요. 그러면 아이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늘 걱정과 추궁만 하던 엄마였는데 말이죠. "왜 혼자 놀았어? 친구들이 안 놀아줘?", "왜 혼자 밥 먹었어? 너랑 먹기 싫대?" 내 아이를 내 아이보다 친구들 무리의 친구 1로 대했던 것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 배운 대로 다그치지 않고, 아이를 꼭 '우리'로 묶지 않고 '너'로만 대했습니다.
저 잘하고 있는 거 맞지요? 이제 나무뿌리 부분을 맞춰놓은 것 같습니다. 1000피스 중 이제 겨우 100피스나 맞췄을까요.
인생은 수많은 챕터로 나뉘어 있고 그중 '육아'라는 영역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고 답이 없었습니다. 저는 와중에 '육아' 챕터에 제 '자존감' 같은 것들이 곁들여져 함께 상담을 하는 내내 눈물도 참 많이 보였습니다. 조금만 틀어지고 어긋나도 선생님께 전화해서 여쭤보는 일도 허다했지요.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나는 괜찮은지에 관해 그 어떤 것도 자신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긴 하는데 말이죠. 머리형들이 그런가 봅니다.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합니다만 확신이 없는 거죠.
선생님, 제게 꾸준히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동안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 어두운 동굴에서 아이와 함께 빠져나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손전등 켜는 법, 물길 따라 걷는 법, 멀리 보이는 빛을 찾는 법, 가파른 길에서 아이의 손을 잡는 법 등을요. 기본 중에 기본이 되는 것들을 배우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또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두운 동굴 속에서 아이의 손을 붙들고 선생님을 다시 목놓아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선생님, 그때는 제 손에 손전등도 있고 아이의 손도 붙들고 있어 제가 선생님의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엔 목소리만 들려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젠 제게 붙잡고 가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겨 조금은 덜 외롭고 덜 무서울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다시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땐 무섭고 외로워서가 아니라 정말 길을 몰라서 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께 염치없게도 기약 없는 다음의 도움을 미리 예약합니다. 다음 동굴을 지날 때에도 도와주세요. 놓지 않고 잘 따라 걷겠습니다. 그러니 아직 감사하다는 말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뵙는 날까지 선생님의 모든 날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