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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Feb 01. 2024

나의 살던 고향은,

밤나무를 끼고 있던 나의 집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쩌면 붉은 할로겐 조명 때문인지도 몰랐다. 눈가도 불그스름해졌다. 보고도 모른 척했다. 

 소주 반, 맥주 반이 담긴 독한 소맥잔을 앞에 두고 그는 조금 흐트러진 발음으로 이야기했다.

 

 "장평 집을 정면으로 두고 왼쪽에 엄-청 큰 밤나무가 있었거든? 오후만 되면 그늘이 지는데 여름이면 그 밑에 앉아서 둘째 형이 꼴 베어 오는 거 그 밑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형이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오는 거야."


 그러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목울대가 두어 번 울렁거렸다. 


 "나는 둘째 형이 장평 들어가서 살 거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형 말이 백 번 이해가 돼. 좋은 기억 하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나한테는 가장 좋았던 기억이야."


 고향의 풍경을 이야기할 때면 붉게 상기되던 얼굴이 고향의 추억을 꺼내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마주 앉아 있던 나는 콜라를 벌컥 들이켰다. 


 "집 오른쪽에는 앵두나무? 개복숭아? 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앵두같이 빨갛고 작은 열매가 피는 나무였는데 그거 형들이 따줘서 먹기도 했었어. 요즘같이 포장된 길이 걷기 좋은데 나는 그때 그 포장되지 않은 산길이, 형들이 버드나무 잎 따서 풀피리 불어보라고 주던 그 길이 너무 좋았다?" 


 또다시 그의 목울대가 울렁거렸고 아까보다 더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기억의 조각이 아니라 기억의 시간 안으로 다녀왔으리라 짐작한다. 그날의 향기, 그날의 날씨, 그날의 내 기분까지 모조리 떠오르게 만드는 그 오래된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짙어졌을 것이다. 마치 어제처럼. 


 "둘째 형이 낫을 들고 꼴을 베는데 나더러 다친다고 저리 가라고 짜증을 내고 다시 꼴을 베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 형은 그 더운 와중에 낫 들고 꼴 베고 지게에 등짐 지고 그 꼴을 베가 지고 가는데 나는 그 뒤로 풀피리나 불면서 따라가고.."


 말 끝이 흐려졌다. 그에겐 형이 꼴을 베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 듯했다. 그의 어머니도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둘째가 밤낮으로 꼴 베오느라 고생 많이 했지. 큰 형은 학교가 멀어 일찍 나가고 누나는 그 작은 손으로 만두 빚고 있으면 지는 나가서 꼴 베어와서 솥에 끓이고. 지 아버지 아파서 앓아누워 할 사람이 없으니 학교에 못 가는 날만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하느라..]


 그의 어머니도 말 끝을 흐렸었다. 자식에게 물려준 가난이,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일복은 자식들에게도 터져나갈 정도로 넘쳐났으니까. 

 7살 차이인 둘째 형이 꼴 베어 오는 모습이, 겨우 15살 된 아들이 그보다 훨씬 더 어릴 때부터 감당해 온 일들이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꽤나 가슴 절절한 모습인 것 같았다. 

 그 그리움이 어찌나 절절한지 그 집을 본 적도 없는 내가 다 그 집이 그리울 정도여서, 그래서 눈물이 조금 났던 것도 같다.


 "비 때문인지 뭔지 개울 다리가 무너져서 저 쪽 편으로 반만 남아있어서 건너갈 수도 없고 그 먼 개울을 빙 돌아서 학교에 가는데 형들이 풀피리 부는 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고, 나는 소리도 잘 안 나오고.. 미소야, 있잖아. 삼촌은.. 나이를 더 먹으면 꼭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기회만 되면 지금이라도 가고 싶어."


 사람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사람들 틈에서만 살아왔던 사람이 사람에 질렸다고 말을 할 때엔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온 걸까.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했을 때에도, 마음 같지 않게 흘러가던 인생이 원망스러웠을 때에도 찾지 않고 생각나지 않던 고향집을 오십이 된 이제야 찾을 때엔 어떤 마음일까. 그런 시골집에 대한 추억이 없는 나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둘째 형은 나의 아버지이고, 그는 나의 막내 삼촌이다. 오 남매 중 셋째와 막내, 어릴 때부터 똑같은 다혈질 성격으로 툭하면 부딪히던 두 사람인데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닮아가다 어느새 노년의 로망마저 비슷해져 간다. 


 "미소야, 삼촌은 있잖아. 고향으로 꼭 돌아갈 거야. 옛날 그 집이 아니어도 괜찮아. 그래도 그 집 근처에 살게 된다면 더 좋겠지. 삼촌은 있잖아.. 꼭 그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거야."


 그 후로도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하는 내내 나는 아빠에게서 들었고 삼촌의 입에서 나오는 그 집을 눈을 감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제는 터만 남고 모두 밭으로 변한 예전 그 집의 풍경을 다시 그렸다. 비록 실제로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하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꽤 괜찮은 화가가 된다. 그러나 함부로 그릴 수도 없는 형제의 집은 그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홀로 머릿속에 그려보는 제 3자일 뿐이고. 


 나의 살던 고향은, 아니 그들이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고 가을이면 짙어진 계절을 알리는 밤나무 옆에 서 있던 낡은 초가집이었다. 그런 낡은 시간들이 어째서 그들의 입에서 나올 땐 가장 반짝이는 시간이 되는 것일까. 어째서 그 집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빛은 늙지도 않는 것일까. 나는.. 왜 그 집을 그리워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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