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대체 왜 다들 조미료를 혐오하는지 알 수가 없다. 조미료가 마치 독극물인 양, 조미료 넣는 식당은 마치 걸러야 한다는 것처럼 매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조미료가 아닌 천연재료들로 육수를 내거나 조미료보다 더 나은 맛을 내는 식당 혹은 요리사, 주부 등 실력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나처럼 요리에 소질이 없거나 그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조미료만큼 좋은 재료도 없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 끓여낸 육수, 팔이 빠져라 휘젓고 볶아 만든 천연조미료 등을 만들 시간도, 인내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인데 티브이에서, 블로그에서, 인터넷 기사에서 자꾸 조미료 쓰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조미료를 쓰는 게 왜요? 인공적인 재료로 만든 것이라서요? 아니면 너무 천편일률적인 맛을 내서인가요? 그런데 그런 음식을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은 접할 텐데요? 뭐가 문제인 거죠?
내 김밥은 조미료 투성이이다. 밥을 버무릴 때는 미원과 마트에서 구입한 통 참기름, 맛소금이 들어가고 당근을 볶을 때에도 맛소금이 들어간다. 시금치를 버무릴 때에도, 달걀을 부칠 때에도 마찬가지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하물며 엄마들이 집에서 담그는 된장조차도 미원과 설탕이 들어가는 판에 우리는 어떤 천연재료로만 음식을 먹고 있다는 걸까?
얼마 전 7살 아들 생일이라 잡채와 김밥을 하고 어묵탕을 끓였다. 며칠 전 미역국을 먹어서인지 미역국은 싫다고 하여 끓여준 어묵탕이었다.
잡채용 소고기에 간장 약간, 후추 약간 넣어 재워두었다가 달달 볶고 당근을 채 썰어 맛소금에 달달 볶고 시금치도 삶아 맛소금과 통 참기름, 간 마늘과 함께 버무렸다. 표고버섯도 맛소금에 볶았다. 삶은 당면에 식용유 약간 넣어 들러붙지 않도록 한 후 한 김 식혀 간장과 설탕을 넣고 버무렸다. 당면을 11분 삶아 볶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이건 우리 할머니의 방법이었다. 아마 이건 옛날 방식일 것이다.
잡채를 다 해놓고 무와 대파를 넣고 어묵탕 육수를 내고 있는 동안 SNS에 잡채 사진을 올렸더니 얼굴은 알지만 친하지 않은 지인이 대뜸,
"어묵탕 저런 걸로 끓여요? 육수 안 내고?"
하고 말을 걸었다. 잡채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라 잡채 뒤에 보이는 어묵탕 재료에 눈길이 간 모양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 무랑 파 넣어서 내긴 하는데 저기 육수맛 조미료 들어있으니까 별다른 거 안 해요."
했다. 멍청하게 대답을 다 했던 탓인가? 조미료가 어쩌고 저쩌고, 애 생일상인데 조미료 어쩌고 저쩌고 하며 갑자기 지적이 들어왔다.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워낙 많이 들었던 얘기다. 7-8년 전쯤? 티브이에서 조미료를 넣는 사람들은 진정한 요리사나 주부가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들을 풍길 때에도 꿋꿋하게 조미료를 넣었던 나는 주부계(?)에서 굉장히 외로웠다. 조미료 넣은 엄마라니!!.... 왜 나쁜 거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나는 단순한 이유 하나였다. 천연재료보다 이게 더 맛있으니까. 그들이 논리적으로 건강의 이유를 들먹인다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단순히 맛으로 음식을 먹는 나로서는 건강까지 논할 지식이 없었다.
문제의 그 어묵탕은 결국 함께 들어있던 육수 조미료와 함께 끓여졌고 김밥 밥에도, 달걀에도, 당근에도 어김없이 맛소금이 들어가 결국 조미료로 버무려진 김밥을 완성했다.
음식은 마음과 정성이라는 말은 조미료 넣은 자로서의 핑계 같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핑계를 댈 이유도 없었다. 조미료 넣는 게 죄는 아니잖아?
천연조미료를 만들고 넣어 건강을 생각한 음식을 하지만 저는 부지런하지 못해요. 아니, 어쩌면 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는지도요.
저는 그냥 조미료 넣고 요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