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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Nov 25. 2023

ADHD 아들과 엄마가 살아가는 법. 3

눈 오는 개학날, 그리고...


 아이에게는 조금 더 여유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학교라는 배움터 안에서 규칙과 규율을 익히는 게 입학 후 가장 먼저 부딪혀야 할 소(小) 사회였지만, 아이는 그전에 학교라는 곳이 자신을 옭아매는 곳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했다. 학교는 배움터여야 한다. 옭아매는 감옥 같다고 느끼면 안 되었다. 

 전학을 결정한 학교도 작은 학교이긴 마찬가지였다. 이전의 학교보다 반 하나가 더 많은 정도. 다만 그곳은 '행복 더하기 학교' 즉, '혁신학교'였다. 나는 전학을 결정하기 전까지 혁신학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일반 학교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했다. 단어적 정의는 '교육의 자율성이 부여되고 변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도 받는 학교' 정도였고 그나마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리상담 선생님께 그곳이 어떤 학교인지 설명을 들어야만 했다. 

 혁신 학교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아이들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이었다. 교과과정보다 자연 친화적인 야외학습에 중점을 두었고 아이의 특성에 맞게 유연한 학습환경을 갖추는 곳이었다. 나는 또다시 작은 학교에 기대를 품었다. 물론 전학을 가기 전, 겨울방학 동안 아이와 학교에서 갖춰야 할 규칙을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겨울방학 동안 나의 어투도 조금 더 다정하고 부드러워졌다. 33년을 이런 무뚝뚝한 말투로 살아와 단번에 말투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내 방식대로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다정함을 버무려보았다. 높낮이 없던 어조에 약간의 높낮이만 넣어서, 오은영 박사처럼 '솔'음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는 다정함. 그것이 나만의 무기가 되기도 했다. 낮은 나의 음성을 되려 아이에게 더 강하게 흡수되는 것 같았다. 


 "책 한 권 가져와볼래? 네가 읽고 싶은 걸로." 


 그러면 아이는 어제 읽던 책을 다시 가져왔다. 처음에는 그런 아이의 성향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책을 읽기 싫어서 어제 읽었던 것을 '더 빨리' 읽기 위해 그런다고 생각했었다. 편협한 엄마는 심리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어머님, 그럴 수 있어요. 어머님 생각대로 더 빨리 읽기 위해 익숙한 책을 가지고 올 수도 있지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아는 책이니까, 내용을 아니까 아이는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빨리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서 그 책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이미 완결이 난 영화나 드라마를 처음 보기에 앞서 나는 누군가가 쓴 '리뷰'를 모두 읽고 나서야 보기 시작했다. 줄거리부터 결말까지 텍스트로 모두 읽고 나야지만 마음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결말을 알고 나야 두렵지 않았다. 내가 그랬다. 

 뭐든 나에게 대입을 해봐야 이해하는 성격,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 아는 성격. 눈치가 없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했고 꼭 확인을 해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고 나는 그것이 단순히 성격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 또한 불안장애와 ADHD 증상이 혼합되어 더 심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아이는 나를 참 많이도 닮아있었다. 주양육자인 내가 이러니 아이 또한 불안할 수밖에. 그 후로 나는 마음도, 태도도 고쳐먹기로 했다. 불안하지만 불안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아이에게 그것이 온전한 평온함으로 다가가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너에게 나의 불안을 옮기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 정도는 보여주고 싶었다. 너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아이는 고맙게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전학 후, 아이가 처음 등교를 하던 날은 눈이 내렸다. 강원도의 3월 중에는 늘 눈이 있다. 이제 3월에 개나리 꽃을 폴짝 뛰어넘고 진달래 핀다는 말은 옛말이다. 정신 나간 개나리는 1월에 피고 때아닌 철쭉이 11월에 피어있기도 했다. 눈이 소복이 내려 발목을 덮던 그날, 아이는 두려운 얼굴로 처음 학교로 들어갔고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하교했다. 교실에서 내내 쓰고 있던 마스크는 바깥으로 나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턱에 걸친 채 발개진 얼굴로 나에게로 뛰어와 이야기했다.


 "엄마, 선생님도 엄청 좋고 친구들이 나한테 와서 말도 엄청 많이 걸었어." 


 친구들이 말을 많이 걸어준 것이 그렇게나 좋을 정도로, 너는 도대체 지난 학교에서 어떤 외로움을 안고 어떤 곳에 고립되어 있었던 걸까. 

 등교 첫날이라 그렇겠거니, 대문자 T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의 웃음에 나도 덩달아 함께 웃었다. 등교 첫날이라 일찍 끝나기도 했거니와 눈까지 소복이 쌓인, 너에게는 꽤나 낭만적인 3월. 

 아이에게 아주 강렬했던 첫 등교 후, 일주일 동안은 점심 먹기 전 하교를 하며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아이들의 적응을 도왔던 학교는 일주일 후 다시 정상적인 2학년의 시간표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이의 태도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개학한 지 2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이의 태도가 한 번에 좋아졌다는 것은 거짓말일 겁니다. 아이도, 저도 부단히 노력해 왔고 지금도 그 노력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물론 이전보다 큰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아이가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며 무거운 입이 열리지가 않아 엄마는 또 애가 타는 중이지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속 태우는 일에 연속인 듯합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우리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속 태워도 태워도 나중에 남을 몇 조각 있겠지요. 그것만으로도 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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