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늦은 밤. 회식에서 돌아온 아내가 외쳤다. 술에 취한 채로.
"나는 대한민국의 ○○를 책임지는 사무관이다!"
아내는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었던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반복했다. 밤이니깐 조용해야 한다고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너무 흥겨운 나머지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자기가 사무관이라 자랑스럽다면서 내 앞에서 춤을 추는데, 원래도 길쭉한 사람이라 그 모습은 마치 개그우먼 장도연 같았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먼저 아내도 중앙부처 사무관임을 알린다. 아내는 회사에서 정말 하고 싶은 업무가 있어 몇 번을 그 부서로 옮기려고 했지만 잘 안됐었다. 아내는 다른 부처에서 전입온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내를 잘 몰랐다. 일을 잘 하는지도 모르는데 열정만으로 중요한 업무를 맡기기는 어려웠다. 아내는 실망했지만 자기의 평판은 자기가 만들겠다며 현재 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국 총괄까지 자원하여 6개월 이상을 무난하게 해냈다. 그러니깐 소문이 났나 보더라. 일 잘하는 사무관으로.
최근에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그 국의 총괄이 서기관으로 승진하고 다른 업무를 맡게 되는 바람에 자리가 비는데 여전히 여기로 오고 싶냐고. 6개월 전에는 먼저 가고 싶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던 자리였는데 이젠 역으로 먼저 제안이 온 것이었다. 이러니 기분이 안 좋고 배기겠는가. 나는 아내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무관이라고 해서 다들 하고 싶은 업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당장 어떤 자리로 보내줄까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내는 하고 싶은 업무가 있었다. 적당한 운이 따라준 것도 있지만, 그 자리를 따내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보다 더 노력을 했다. 그러고 그 자리에 가게 됐다고 이렇게 기뻐한다. 내 아내가 진정한 공무원이다. 그 부서장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다. 너무 좋아서 춤까지 췄다는 것을.
아내는 나를 보고 남들과 다른 면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 특이하단다. 브런치에다 그런 내 마음을 너무 솔직하게 적으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기도 어려울 뿐더러, 악플이 달릴 수도 있다며 걱정도 한다. 그렇지만 내 아내도 나랑 똑같이 업무에 진심인 사람이다. 자기가 하는 업무에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 필요하면 밤을 새우거나 새벽에 출근까지 하면서.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결국, 너도 나랑 똑같네. 그러니깐 결혼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