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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y 19. 2022

보고의 명분이란

무엇인가를 제안하거나 충고하는 때에는 그에 맞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명분이라 칭했지만 그게 뭔가 대단히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가는 상대가 제 말에 오해하고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를 간단하게라도 말하는데, 저는 이것을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명분'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런 명분을 잘 활용하는 편입니다. 후배에게 사무실 전화 예절을 알려줄 때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에 누구랑 전화하는 게 들렸는데, 상대방이 사무관님 말씀을 오해하는 바람에 크게 곤란을 겪으셨죠?"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죠.


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도 시간이 쫓겨 지내는 상사가 저에게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야 한다면 그만한 명분이 있어야겠지요. 저에게 중요한 일이라도 상사는 관심이 적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보고할 타이밍이라 생각했지만 상사는 왜 지금 이 보고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를 할 때는 처음에, 보고서에서도 가장 앞부분에 제가 지금 굳이 이 사안을 보고하는지 이유를 잘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사의 관심과 집중을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보고의 명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언론이나 국회의 관심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 나온 기사에 대하여 즉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보고의 좋은 명분이 됩니다. 언론이나 국회는 예고 없이 이슈를 터뜨립니다. 이것을 처음에 잘못 대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이슈가 커지게 됩니다. 어디 작은 신문에서 쓴 기사를 무심코 지나쳤다가 큰 언론사에서 그걸 받아 쓰는 바람에 일이 커진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해명하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깔끔하게 해결되진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강한 어조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대응했더라면 불필요한 곳에 힘을 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언론이나 국회에서 나온 이슈 때문에 보고를 한다면 신속함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상사든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죠.


두 번째로는 외부 일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 월 며칠에 상사가 참석해야 하는 위원회가 개최되는 것도 보고의 좋은 명분이 됩니다. 언론이나 국회의 이슈는 예고 없이 발생한다면, 이것은 예정되어 있는 일정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위원회나 행사의 참석은 웬만하면 일찍부터 예측이 가능한 사안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정이 다가올수록 보고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보고하게 되면 보고를 받는 사람은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너무 일찍 보고를 하면 관심을 끌기 어렵고, 너무 늦게 하면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혼날 수도 있습니다. 무작정 빨리 보고한다기보다는 최적의 보고 시점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는 내부 의사결정이 필요한 보고가 있습니다. 사실 보고를 받는 사람 입장만 본다면 썩 내키지 않는 보고일 것입니다. 상사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현재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이 때는 상사에게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왜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고 시작부터 바로 "A단체가 무엇을 요구하면서 언제 어디서 시위를 할 예정이다"라고 하여 상사의 시선을 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앞으로 한 달 후에 어떤 문제가 터질 것을 지금 알아냈고, 이렇게 대응하려는 데 미리 관련 내용을 공유하겠다"라며 상사의 집중을 이끌어 낼 수도 있습니다.


내부 의사결정에 대한 보고는 언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이 없는  같습니다.  경험상 보고를 빨리 하는 것보다 관련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요하더군요. 보고를 받는 사람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궁금한 점들이 많을 것이고, 보고 과정에서 질문을 많이 하게  것입니다. 여기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보고의 신뢰성이 떨어져서 결정권자가 의사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자료조사만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보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보고 배경으로 무엇을 적을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보고 배경은 적지 않더라도 보고서의 틀이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고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영문도 모른 채 갑작스러운 보고를 듣게 된다면 집중력이 떨어지겠죠. 기분이 좋진 않을 것입니다. 보고 과정이 잘 흘러가기 위해서는 보고 배경을 얼마나 잘 쓰는지가 중요합니다. 보고서의 첫인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고서를 무미건조하게 적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밋밋해서 어디 한 군데를 자극적으로 적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보고 배경을 활용하는 편입니다. 명분 없는 보고는 가급적 피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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