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육이 딱 내 적성인데

by 킹오황

얼마 전 지방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교육을 담당한 행안부 주무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교육 평가 점수가 엄청 높았다고. 적극적으로 교육을 해준 덕분에 교육생들 반응이 좋았다며 또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립서비스인 줄은 알았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긴 하거든요.


먼저 저는 어려운 내용은 다 뺍니다. 2시간 기준의 표준강의안이 120페이지가 넘는데 저는 40페이지 수준으로 다 빼버립니다. 그렇게 쳐내고도 쉬운 부분 10장 정도만 이해시키겠다는 목표로 교육자료를 만듭니다. 제가 교육을 들을 때도 느낀 점이지만, 2시간 내내 집중할 수도 없는 데다가 교육을 듣고 나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강의를 할 땐 정말 필요한 것 딱 3가지만 집어서 이것만 기억하고 가면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합니다.


두 번째로는 저는 강의를 실습 위주로 합니다. 대면 강의 아니면 안 갈 거라고 해서 우리 부처 교육 담당자도 저를 까다로운 선생이라며 놀리기도 합니다. 요즘 제가 주력하는 강의는 컴퓨터 실습이 필요한 것인데요, 강의 시작부터 말합니다. 2시간 동안 모두가 저를 따라 실습을 하셔야 하고, 제가 일일이 컴퓨터 화면을 체크할 테니 못 따라오는 사람이 없도록 할 거라고요. 어떤 나이 드신 공무원은 매우 난감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예외는 없었습니다. 강의 평가가 안 좋게 나올 걸 각오하고 그렇게 했는데 좋게 나왔다니 이 방향이 맞는 거겠죠?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제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거에 거부감이 없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요청이 와서 다른 학교 대학원생과 교수 앞에서 제가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매일 교수님에게 못 한다고 혼나는 처지에 남들 앞에서 어려운 내용을 강의를 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고,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제가 딱했는지 그러셨습니다.


"킹오황아, 이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너와 나 밖에 모르거든. 나가서 자신 있게만 말해. 여기서 나만 아니면 너한테 딴지 걸 사람 아무도 없으니깐."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질문의 의미를 이해도 못 한 채 답을 했습니다. 웃긴 건 아무도 제 답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단상 위에서 그런 어이없는 경험을 겪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발표하는 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요. 그러니깐 다음부터는 강의할 때 전혀 긴장이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이해시켜주고 싶어서 정말 쉽고 간단한 내용으로 준비해야겠다 싶더라고요.

keyword
킹오황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공무원 프로필
구독자 1,199
작가의 이전글나는 대한민국의 ○○를 책임지는 사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