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Jan 21. 2024

밥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중고참 사무관으로서 후배나 주무관에게 밥을 살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과 밥을 먹을 때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제가 엄청 재미있거나 웃긴 사람도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열심히 일하는 게 유익하다는 방향으로요.


친한 주무관은 그런 저를 보며 놀려댑니다. 또 제가 정신교육 한다고 말이죠. 어떤 후배는 정신교육이 필요하다며 밥을 사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제가 평소 말재주는 없지만, 그런 분야에선 말발이 좀 있나 봅니다.


말이 정신교육이지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본인이 하는 업무는 100% 이해해라, 민원인 전화 함부로 끊지 말라, 요청이 오면 가급적이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라, 윗분들에게 신뢰를 얻어라 그러면 편해질 것이다, 아침마다 스크랩된 신문을 읽어라. 뻔한 말입니다. 그래도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 주고 싶어 집니다. 이런 게 진정 꼰대겠죠.



제가 그런 사람인 걸 잘 아는 아내는 그럽니다. 밥을 살 땐 절대 돈 아끼지 말라고요. 재미없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밥이라도 비싸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이죠.


어차피 옷이나 신발도 안 사고 돈 쓸 줄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럴 때라도 돈 좀 써야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으러 갈 땐 비싼 식당을 골라 갑니다. 저녁에 술을 살 땐 연태고량주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고요. 제 용돈의 대부분은 먹는 곳에 다 쓰는 것 같습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미리 말을 합니다. 저는 부자니깐 먹고 싶은 것 마음껏 시켜도 된다고요. (실제로 부자는 아닙니다. 제 아내는 휴대폰에 저를 "마음부자"라고 저장했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뉴 고르는데 주저주저할까 봐 손수 비싼 음식을 먼저 고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딱히 먹고 싶은 게 아니라도 일단 가격이 젤 높은 걸 골라야 그다음 고르는 사람의 마음이 편할 것 같더라고요.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종종 밥이나 술 사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진심인진 모르겠지만 빈말로라도 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러지요. 저는 흔쾌히 승낙합니다. 제가 돈을 많이 써서 식당도 잘되고, 후배들도 맛있는 거 먹고, 저도 제 이야기 맘껏 하고, 그런데다 후배들이 훌륭한 공무원이 되어서 열심히 일까지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만, 이게 지속 가능하려면 제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네요. :)

작가의 이전글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