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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ul 30. 2024

전화영어 선생님의 조언

퇴원한 날부터 무려 한 달간 병가를 썼다. (공무원은 1년 중 60일까지 병가를 쓸 수 있다) 괜히 무리해서 일을 하거나 움직였다간 감염이 도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께서는 2개월간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둘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8월 초에 복귀하기로 했다.


누구는 한 달 동안 회사도 안 가고 집에서 쉬는 것이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안 아픈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계속 아팠기 때문에 실상을 안다면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만 아팠던 게 아니라 몸 전체가 골고루 아팠다.


처음엔 두드러기였다. 목이 아파서 누워서 쉬면 등이 가렵기 시작했고, 운동이라도 좀 해야겠어서 집 근처를 걷고 나면 발이 불긋불긋한 발진으로 가득했다. 자다가 무의식 중에 긁어 염증으로 심하게 번진 부위도 있었다. 원인은 항생제 부작용이었고, 항생제를 바꾸고 나니깐 간지러운 게 확 줄었다. 그래도 밖에 돌아다니면 약하게나마 발진이 생기긴 해서, 거의 집 안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코 안에 염증이 생겼는지 코막힘과 콧물, 두통이 계속 괴롭혔다. 염증은 편도선과 기관지까지 퍼졌고, 목젖이 붓고 길게 늘어져 말을 할 때 걸리적거릴 정도였다. 항생제를 몇 달간 복용한 것 때문에 면역력이 많이 약해진 것인지 조금만 뭘 해도 몸에 이상이 생겨서 마음 놓고 뭘 먹지도 못했다.


밤엔 잠에 들 수 없었다. 감염은 잘 먹고 잠도 푹 자야 낫는다는데 아픈 사람에겐 잘 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우면 다리에 힘을 줘서 움직이고 싶어지는 바람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이런 것도 병인가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하지불안증후군이란 게 있었다. 철분이랑 도파민 부족이 원인이라더라. 병원과 집에서 두 달을 혼자 멍하게 보낸 탓인가 싶었다. 이젠 저녁마다 걸으며 영양제도 꼬박꼬박 먹고, 종종 게임도 한다.




사실 매일이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으면서 어제보다 목 통증이 나아졌는지 심해졌는지 목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좀 좋아졌으면 기뻐하고 나빠졌으면 하루종일 걱정하는, 소위 일희일비의 생활을 보냈다. 나만의 목 검사가 끝나면 몸에 다른 부분도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고 새로운 증상이 확인되면 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에게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워서, 새벽마다 하는 전화영어 선생님께 슬며시 털어놨다. (아내 외에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그래서 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미국사람이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적당히 의역하면 이렇다.


당신에겐 트라우마가 있음을 명심해라. (척추와 척수가) 감염됐다고 진단받았을 땐 최악의 경우 혼수상태 또는 죽음까지도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목에 척추뼈를 제거할 정도로 큰 수술 직전까지 간 것 아니냐. 그 당시에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함께 치료해야 하는 시기이다.


지금까지 난 육체적인 회복에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정신적으로도 회복할 필요가 있단 걸 깨달았다. 이제부턴 "아파도 아픈가 보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한다.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거의 두 달을 일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새로운 자리에서 헤매면 어쩌나 걱정하거나 조바심을 내지도 않을 것이다. 항상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걸 염두해서 긍정적인 생각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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