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의 예전과 지금
친구를 만났다. 대학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의 삶을 나 대신 대필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만한 (내가 쓴 것보다 더 잘 써버릴지도 모를) 그냥 다 아는 그런 친구의 생일을 기념하여 간만에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에서 우아하게 파인-다이닝이란 것을 해보았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여윽시 자랑스런 이 나라의 일꾼 40대 중년답게 회사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우리는 윗 상사를 불평하는 시간보다 심오한 나이 어린 동료들의 알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해석하기 위한 대화가 더 길어진 것으로 보아 확실히 나이 먹은 꼰대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몇 년 전부터 회사는 연일 MZ세대 (Millennial세대+ Z세대)를 모르면 사생결단이 날 것처럼, 그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책을 읽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연애할 때도 누군가를 이렇게나 열렬하게 궁금해하고, 연구해본 적이 없는 나는 "우왓! 이거 뒤쳐지면 안 되는 트렌드인가 봐!" 하며 열심히 그 행렬에 동참했지만 글로 배운 연애와 같이 글로 배운 MZ세대에 대한 내 지식은 참으로 알량하고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X세대의 마지막 끝물이다. 나름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께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고, 어찌저찌 대학에 들어가 보니 학생 운동을 가열차게 하는 선배들을 뒤로하고 눈치 없이 신나게 놀아제낀 학번이 되어버렸다. 운이 좋아 비교적 쉽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윗 선배들의 기에 눌려 적당히 눈치 보며 비록 속은 "퐈이어~ 불타오르네"를 부르지만 겉으로는 착착 손발 맞춰가며 일하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이다.
회사 선배들의 수가 너무 많아 내가 한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는 날은 너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데 그노무 회사는 매년 더 어렵다며 매년 더 신입들을 적게 뽑다 보니, 이제는 선배뿐만 아니라 세상 소중한 후배님들까지 챙겨가며 일해야 하고 (후배가 "그 선배랑 일하기 싫어요~ 뿌잉~"이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큰일 난다) 그 와중에 꼰대 소리라도 듣지 않으려 짐짓 트렌디한 척하기도 해야 하는 피곤한 세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속담에서? 어르신들 중에 누군가? 얘기한 것을 분. 명. 히. 들은 것 같은데, 갑자기 세상은 우리를 건너뛰기 시작했다. 그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거라고 두 손 모아 부끄러워하며 얌전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X세대는 건너뛰고 MZ세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 신문기사까지 나온 것 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건너뛰임을 당한 세대이지만 (에라이) 그 나름대로의 소소하고 소중했던 삶의 순간순간들을 기억해내고 싶었다. 분명히 "라떼는 말이지~" 내용이 될 것이 뻔하지만, 당당히 본. 격. 적. 라떼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왜? 내가 기억하고 얘기하고 싶다는데 왜? 안돼? 흐흑 (울지마. 울지마.)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마지막 X세대, 나의 본격 라떼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당당히 세상의 한 축으로 살아낸 X세대들의 예전과 지금의 이야기이다. 누군가는 또 꼰대 얘기라고 해도 누군가는 참 편하게 산 얘기라고 해도 끝까지 기억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그냥 건너뛰기엔 너무나 억울한 우리가 누군지,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
-오늘의 BGM.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신해철
21.11.29 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