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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Feb 13. 2024

Deus ex machina

신이시여.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와 그의 작품 <For the love of God>(2007)

  가끔은 신이 있으면 좋겠다. 그놈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가끔은 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 되지 않는 무언가를 마주치면 진리와도 같던 그 사유는 효력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주말마다 아까운 휴일을 바치면서까지 교회, 성당 절에 가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결점이 없는 것 같은 존재이자, 모두가 믿기 때문에 진짜로 존재하는 것 같은 존재인 신은 과연 존재할까? 믿는 자에게는 존재하고 불신자에게는 한낯 먼지보다 못한 허상일까? 


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비극에서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기 위해서 갑자기 신이 등장하는 수법이다. 전설이나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신은 전지전능하다. 뭐든지 알고 있으며, 뭐든지 해결하며, 언제나 선(善)의 편에 서는 존재다. 그러한 존재가 있기에 작품 속에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나 재해도 해결된다. 물론 모든 작품에 신이 등장해 해결사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신이라는 존재는 있다면 든든하다. 어떤 말도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해도, 창조자이자 전지전능한 존재인 그가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에.


Hoc quoque transibit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나에게 전지전능한 결점 없는 신은 없다. 하지만 영원한 고통은 없더라. 상처가 생기면 낫고, 팔이 하나 없어도 결국엔 익숙해진다더라. 모든 고통은 "Hoc quoque transibit"의 뜻처럼 결국 지나간다. 


  예전에는 왜 있지도 않은 신을 믿고, 존재하는지도 불가지 한 그러한 존재에게 본인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뉴스도 못 믿는 시대에 어떻게 형이상학적인 존재를 믿고 추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엔 있던 없든 간에 신이라는 존재에게 의지하며 사는 게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인생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일어날 리 없겠지만 의지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삶에 대한 태도가 굉장히 고무적으로 변화할 것 같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되지도 않을 로또를 하나 사며 행복회로를 돌리듯이 신이라는 존재도 누군가에겐 그렇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로또가 당첨돼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만약 그것이 당첨된다면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낙첨되어도 다음 사면 언젠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낙관적인 태도로 다시 로또를 구매한다. 소망과 기도라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다. 소망대로 이뤄지지 않아도, 다음에는 그 소망과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기도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종교는 그 소망을 이루어줄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절대자께서 과연 내 소원을 듣고 힘을 써주신 것일까 아니면 내 소망과 우연의 결과물일까.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의 해석이 맞는지 우린 알 수 없다. 


Ars vel amat  

  그래서 우린 뭔가에 미쳐있어야 한다. 그건 예술일 수도, 취미일 수도 있다. 이 각박한 세상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도 아마 나의 편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래서 나를 달래줄 무언가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예술 혹은 취미. 나에게 그런 존재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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