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경수 May 15. 2024

미적 이율배반

Aesthetical antinomy

셰일라 힉스 컬렉션 소장품 전시

  청담동에 소재하고 있는 루이비통 에스파스에는 다양한 전시가 무료로 개최된다. 2021년 게르하르트 리히터 컬렉션을 보러 처음 갔던 것을 계기로 가끔 가게 되었다. 첫 방문 이후로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신디 셔먼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저곳에서 감상했다. 그리고 최근에 한번 더 갔다 왔다. 그런데 오랜만에 작품에 의해서 당혹감을 느꼈다. 요 근래에 바빠서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좀 식어서 그랬을까? 분명히, 카메라로 찍은 사진, 그저 단색으로 채워진 추상화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던 내가 이상하리 만큼 저 작품은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류수거함의 옷들을 색깔별로 해체하고 뭉쳐서 버려놓은 쓰레기 더미인가 싶었다. (개인적인 감상임,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난은 아님.) 


  사람이라는 게 참 이율배반적이다.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웨이 아이아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그 사람의 손길을 하나도 거치지 않았음에도 그 사람의 작품으로 인정함에도, 왜 셰일라 힉스가 섬유로 만들어 놓은 저 옷산더미(?)는 왜 작품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까. 정말 당혹스러웠다. 천장에 걸쳐져 있는 작품(위 사진의 맨 오른쪽 작품)은 저게 칼더의 모빌을 모방하고자 한 건가 아니면 그저 디스토피아적인 매드맥스적 미래를 표현한 건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으며, 사진의 가운데에 위치한 작품은 뭔가 벽에서 자라나는 괴생물체 같이 느껴져서 그로테스크한 숭고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름답다고 느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있는 산더미 같은 작품은 나에게 가장 큰 당혹감을 주었다. 저것은 설치인가 방치인가? 과연 저 작품을 설치할 때, 저 실더미들은 제 자리와 순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임의로 부품을 설치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하나의 덩어리가 그저 단색이 아니라 약간의 오묘한 그라이데이션과 불규칙적인 텍스쳐를 가짐으로써 상한 것 혹은 썩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했다. 대체 저 작품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미'를 추구하는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직원에게 이게 다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직원은 친절하게 이 세 작품이 전부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저 작품을 감상하고, 찜찜한 채로 퇴장했다. 그리고 산책을 좀 하며, 방금 본 전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왜 저 작가의 작품만 이렇게 이질적이게 느껴질까? 그동안 특이한 작품들도 많이보고, 나름 미술에 대해서 많은 책과 논문을 보고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등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허를 찌르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저 작품들을 감상할 때, 저 작품들의 이름도 발견하지 못했다. 의미와 개념이 중요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데 작품명을 간과했다니. 그래서 전시회에 작품의 이름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못 찾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다른 방문객의 후기를 찾아보니 내가 못 찾은 것이더라. 그래서 왜 그렇게 당혹감을 느꼈는지 그 이유를 찾았다. 그럼에도 나는 저 기분 나쁜 오브제를 작품이라 봐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대체 저게 왜...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만약에 내가 첫 관람에서 작품의 이름들을 인지하고 관람을 했더라면 이런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셰일라 힉스라는 작가의 전기와 그의 작품 정보를 미리 알고 갔더라면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모든 작품이 나에게 명작이라 인정될 수 없듯이, 모든 예술작품이 나에게 작품으로 인정될 수 도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린 다다이즘 이후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작품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상에는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존재하고, 각기 다른 매력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작품들이 한결같이 나를 미적으로 만족시켜 주겠는가? 


  그럼에도 저 작품들을 이해해보고 싶다. 과연 힉스는 무슨 생각으로 저 작품들을 만들었으며, 그 의도는 무엇일까. 저번 방문 때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도슨트 없이 감상했는데, 조만간 도슨트와 함께 관람함과 동시에 작품명도 살펴봄으로써 저 작품들을 이해해 보고, 더 고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그저 더미 같던 저 작품이 과연 무슨 수수께끼를 품고 있을지 기대가 되며, 흥미로워졌다.


네이버 블로그


글쓴이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 - 현대미학과 그의 변명

작가의 이전글 맨스티어의 심미적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