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스쳐가는 봄바람 같은 것
책이 출간된 지 3주 정도 지났다. 일상에 그리 큰 변화는 없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육아 출근을 하고,
꼭 형아 데리러 갈 시간만 되면 깊게 잠들어 있는 둘째를 내려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하필 이 시국에 기관지염에 걸린 첫째 때문에 다른 엄마들의 눈치를 보며 "안녕하세요. 기관지염 때문에 기침하는 거예요. 안녕하세요. 코로나 아니에요. 기관지염이에요." 하며 진땀을 빼다 집에 들어온다. 두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집에 들어오면 이미 녹초지만 본격적인 일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출간일에도 그리 큰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공교롭게도 출간일에 우리 집에 오미크론이 방문했다.
남편은 연신 기침을 하며 맥을 못췄고, 둘째는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후두염이 같이 와 입원을 했다. 전화를 받으면 책에 대한 축하보다는 남편은 괜찮은지, 아이는 괜찮은지 걱정하는 말이었다. 나조차도 축하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책이 나왔다해서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는건 아니다.
여전한 일상을 보내는 중에, 서점에서 내 책을 봤다며 사진이 온다.
특별할 거 없는 날 중에, 내 책이 어느 기사에 실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여느 날과 같은 날을 보내는 중에, 반가운 친구에게 "야~너 책 냈어?" 하는 카톡이 온다.
두 아이들과 늘 정신없이 돌아갔던 하루에 '픽' 하고 웃는 순간이 생겼다.
작년에,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 문득 궁금했다.
'출간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출간한 작가들의 SNS를 돌아다니는데 생각보다 출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출판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 특정 기간 동안만 무언가가 일어날 뿐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책만 가지고는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구나.'
하지만 무언가 변했다. 분명 변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확실히 변한 게 무엇인지.
변한 건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두 아이를 독박 육아하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목표한 것을 1년 이상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히 끌어와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려워도 도전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 완벽하지 않음마저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계속 성장할 거니까.)
내가 생각하는 책 출간의 나의 진짜 전리품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나를 향한 신뢰, 스스로 깨닫게 된 나의 힘 같은 것이다.
디즈니 만화 Cars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피스톤 컵은 그저 빈 컵일 뿐이다
책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책은 그저 종이 책일 뿐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 여러 찬사들도 그저 한번 기분 좋게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과 같은 것이다.
책을 통해 진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책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니까 책을 통해 무언가를 이뤄 낸 사람들은 아마 책만이 삶에 변화를 가져다줬다기보다는
책을 쓰는 과정 중에 연마된 능력,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성장한 내적인 힘과 동력을 가지고
더 큰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을 그려 나간 것이 아닐까?
설령 변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책쓰기 전과 후는 다를 것이다.
나 또한 내 진짜 전리품들에 집중하고, 그것을 오롯이 느끼고, 그 힘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고민할 것이다.
아,
스쳐가는 바람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반가운 사람들의 카톡도, 사인을 해달라는 주변의 너스레도, 소소한 제안들과 한 대학원에서 내 책을 수업자료로 쓰기 위해 단체로 구매했다는 신기한 소식들도….
팍팍한 삶에 산들한 바람이 한번 스쳐가 살짝 웃음이 지어진다면 그건 '오늘 하루'의 아주 큰 의미이다. 그것들이 내 삶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아도,